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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먼 일본의 '새로운 시작'/이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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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20 조회1,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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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토야마 총리는 취임 때의 70% 지지가 8개월 만에 20%로 추락하며 물러났다. 지도자는 언어가 갖는 무게가 권위의 산모(産母)다. 말로 실물보다 크게 보이면 밑천이 드러나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해서는 안 되고 약속했으면 지켜야 한다. 하토야마는 오키나와 주민에게 미 해병대 항공 기지를 현(縣) 밖으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그 공약을 못 지켰다.

그 공약이 터무니없었던 것은 아니다. 허약한 행동 의지가 문제였을 뿐이다. 1965년 드골은 나토 속 미국과의 동맹이 불균형이라고 보고 시정을 요구했다가 통하지 않자 프랑스 내 나토의 모든 군사 시설을 영토 밖으로 밀어냈다. 미국과의 관계가 무너진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국·프랑스 관계는 지금도 건재하다.

드골의 기골이 없는 하토야마는 처음부터 탈미(脫美)를 들먹이지 말았어야 했다. 비전의 목표는 얼마든지 높을 수 있지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국가가 준비된 만큼이기 때문이다. 오래 미국에 의존해온 일본 국민으로서 미국과의 갈등은 견디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목표를 향한 길을 찾기는 쉬우나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 어렵다. 의지도 박약하고 준비도 안 된 국민의 상태를 읽지 못한 하토야마의 머리에 일본 총리의 모자는 너무 컸다.

예상대로 간 나오토 부총리가 후임으로 뽑혔다. 하토야마보다 대중적이며 단호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 하토야마와 함께 퇴진한 실력자 오자와를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총리가 되기 위해 다수(多數)인 반(反)오자와 그룹에 영합하려고 "당분간 물러나 있으라"고 비(非)일본적으로 대놓고 일갈했다. 정권교체의 주역이라고 자부하는 와자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일본 정치에서 원한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일본 민주당 사람들은 그들 정권이 단명(短命) 총리를 양산했던 자민당과 다를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보면 결국 그 전철(前轍)을 밟게 될 운명인 듯하다.

외교가 내치(內治)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앞으로도 일본 외교에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 상황 관리의 축(軸)은 계속 미국과 중국일 것이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듣기 좋은 말을 할지 몰라도 행동으로 뒷받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본래 내정(內政)형인 간 총리가 시급한 경제와 복지 공약의 실천에 매달릴 수 있다. 탈미와 아시아 중시를 내세웠던 하토야마가 맥없이 무너진 지금, 미·중에 비교한 일본의 위상은 한층 초라하다.

하토야마를 탓한 일본 국민이 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욕구 불만이 역풍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도 일본의 정국은 과도기의 연속일 것이고, 그래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진정한 변화는 실망이 길게 이어진 끝 무렵에 나타날 것이다. 그 방향이 \'친미(親美)\'일지 \'탈미\'일지, \'성장\'일지 \'분배\'일지, \'보통국가\'일지 \'평화국가\'일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일본의 정치인과 국민들도 모를 것이다. 비전과 목적의식, 그리고 행동 의지가 뚜렷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장래가 불투명하다. 반세기 만의 정권교체는 아직도 새로운 시작을 낳지 못하고 있다.

이주흠 한국외대 교수

조선일보/2010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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