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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주는 것도 나라 실력이다 /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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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28 조회1,5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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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된 것은 획기적인 경사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격상됐다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되 어떻게 주는 게 잘 주는 것인지,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가며 우리만의 노하우를 쌓아가야 한다. 중앙·지방정부는 무계획·즉흥적 지원을 피해야 하며, 정부가 미처 손 못 대는 분야는 민간이 나서서 보완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부처·지자체들이 개도국 무상원조를 하는 과정에 중복원조·과다출장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았는가.

 나는 최근 여성 비정부단체인 ‘여미래(여성이 여는 미래)’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25일간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코트디부아르를 다녀왔다. 말라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살충제를 뿌린 모기장 7000개와 감염판별용 키트(소형 검사기) 등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굳이 코트디부아르를 택한 것은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식민화할 때 말라리아로 인해 ‘백인의 무덤’으로 불린 곳이며, 그동안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지 않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9년 유엔 총회에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의 물꼬를 터 준 나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3등 서기관과 대사로 근무한 곳이라 애착도 크다.

 봉사단 일행은 주 코트디부아르 한국대사관이 선정한 기글로·다나네·디디에브·아파리크로·아구 등 오지 마을 다섯 곳을 돌며 모기장·키트·약품을 전달했다. 첫날 기글로 마을에는 중앙정부 총무처 장관과 주지사도 동행했는데, 임산부들을 포함한 300여 명의 주부·아이들이 모기장과 연필을 받으려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눠주려고 점심도 거른 채 뛰어다녔다. 반군단체가 장악하고 있던 다나네 지역에 들어설 때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역 실력자인 관세청장과 촌장들은 봉사단을 환영하면서 임무 완수와 안전 귀국을 기원하는 의식까지 치러주었다. 오지 마을 디디에브에서는 “당신들을 위해 소 두 마리를 잡았는데 도착이 하루 늦어져 대접하지 못하게 됐다. 냉동보관 시설이 없어 상하기 전에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양해해달라”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이 마을 출신인 외무차관은 “60년대에 아비장(코트디부아르의 경제수도)과 서울에는 각각 다리가 두 개 있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오늘날 아비장의 다리는 여전히 두 개인데, 한강에는 26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며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해 모두의 마음이 찡해졌다.


 말라리아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만 매년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모기장과 값싼 예방약만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정부 차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사명감과 인류애로 무장한 민간단체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처럼 인도적 공적개발원조 일부를 비정부기구(NGO)에 위임하는 방법도 참고할 만하다. 대외 원조에도 노하우와 격(格)이 따르는 법이다.



김승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 전 주코트디부아르 대사

중앙일보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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