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 언론기고 및 출판





도시의 미관과 시민의 교통편의/이인호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1-05-10 19:06 조회1,131회 댓글0건

본문

겉모습으로 볼 때 서울은 나날이 아름다워진다. 낡은, 그리고 어떤 경우는 그리 낡지 않은 듯한 건물이 계속 헐려나가는 자리에 고급스러운 초현대식 구조물이 들어서고 고가와 육교를 철거하고 버스중앙차로를 만드니 도시의 격이 한층 높아지는 듯하다. 청계천 복개사업에서 시작된 도시미화 사업은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이르는 대한민국 대표거리의 조성으로 연결된 듯하고 한강변을 중심으로 사방에 공원을 조성하고 특히 자전거만 타면 위험 없이 시내 어디에나 갈 수 있게 길을 만드니 얼마 안 가 서울은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쾌적한 청정도시로 변할 법도 하다. 적어도 그것이 국토해양부나 서울시 당국이 끊임없이 공사판을 벌이면서 내세우는 명분인 듯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동네 뒷산까지 공원으로 조성하며 조명이 찬란한 비싼 구름다리까지 놓아주는 복지혜택까지 입는 우리 시민 대다수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그만큼 높아지는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절대다수인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수단과 택시, 그리고 자가용을 때에 따라 번갈아 이용하며 서울 한복판에 사는 내 경험으로는 버스나 지하철의 불합리한 노선 구조 및 환승 체계와 교통체증에서 오는 불편과 시간 낭비는 지난 몇 년 사이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으며 택시 운전사의 불만 또한 결코 나에 못지않음을 안다.

물쓰듯 돈쓰며 체증은 더 악화

지난 몇 해 사이 우리 주변에서 진행하는 도시미화 사업을 보면 누구를 위한 일이며 엄청난 예산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가적으로 더 긴요하게 써야 할 데는 없는가 하는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당장의 불편이나 희생, 그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더라도 앞을 길게 내다보면서 큰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그러나 일의 타당성과 예산배정의 우선순위와 공평성, 일 추진 방식의 효율과 경제성에 관해서는 납세의 부담을 안는 시민을 설득하고 검증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니면 냉혹한 비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

예를 들어 몇 해에 걸쳐 많은 불편을 끼치며 추진한 광화문의 대한민국 대표거리 조성 사례를 보자. 디자인 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런 거리를 조성하기 전에 반드시 선행했어야 할 일이 대중교통 수단의 확충이었다. 차로를 줄이려면 지하철을 한강 밑으로 뚫어서라도 서울의 강남북을 바로 연결하며 대중교통만으로 대한민국 대표거리에 쉽게 접근할 교통 인프라 구축을 우선했어야 했다. 지금 현재로는 전보다 훨씬 심한 교통체증이 바로 광화문 앞에서 빚어진다. 광화문 복원이 끝나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포대교에 분수를 설치하며 자전거 길을 만들기 위해 잠수교의 두 차로 중 하나를 봉쇄한 일도 미관과 명분을 위해 실속을 버린 대표적 사례이다. 남겨 놓은 한 차로마저 3개나 되는 신호등 때문에 쾌속로의 기능을 잃었으며 차로를 없애는 공사에 착수한 시점이 바로 인근에 수천 가구가 입주할 대형 아파트 단지가 2개나 올라가던 때였으니 시민의 교통편의는 완전히 외면하는 냉소와 무책임이 이보다 더 클 수가 있었을까. 자전거 타기를 장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런 여유도 없이 생업에 매달리며 하루에 몇 번씩 다리를 건너야 하는 절대다수 시민의 불편과 시간낭비는 무시해도 되는가. 강남북을 잇는 중앙 간선로인 반포대교 지역이 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지옥으로 변할 것은 불 보듯 내다볼 수 있는 일이다.

교통 흐름 원리는 망각했다는 인상을 주는 시설, 예를 들어 교차로 아무데나 설치하는 삼각주, 중앙분리대 구실도 못하면서 불빛을 받아 너울거리며 마주 달리는 운전자의 시각을 교란시켜 사고의 위험을 유발시키는 주홍막대가 여러 곳에서 늘어난다. 그래서 시민은 서울시에 돈이 넘쳐나는가 보다고 빈정거리며 공사비를 따내기 위해 일을 확대하며 혈세를 낭비한다고 정부를 지탄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공직자까지 싸잡아 불신한다.

시민편익에 사업 초점 맞춰야

교통사정의 악화보다도 더 큰 문제는 손발이 따로 노는 듯한 이상한 일이 사방에서 벌어져도 제어하고 조정할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는 점이다. 경기부양은 필요하지만 낭비를 허용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며 미관을 개선한다고 시민의 시간처럼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불편을 가중시킨다면 용납할 수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의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전시행정이 득표 효과를 내던 시대는 지났다. 중앙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정치인도 사회통합과 시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문제를 체계적으로 원칙 있게 해결하는 자세를 보일 때만 유권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동아일보/2009년 11월 26일

Warning: Use of undefined constant php - assumed 'php' (this will throw an Error in a future version of PHP) in /home1/page87/public_html/kcfr20/skin/board/basic_book/view.skin.php on line 18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7건 12 페이지
회원 언론기고 및 출판 목록
번호 제목
117 고향길에 불러보는 우리의 소원/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215
2011-05-10
1215
116 세종시, 6자회담, G20 - 기회와 선택/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44
2011-05-10
1144
115 15년간 하루 2번씩 중국인 위해 기도/김하중
일자: 05-10 | 조회: 1305
2011-05-10
1305
114 국치 100년을 곱씹어야할 이유/이인호
일자: 05-10 | 조회: 1149
2011-05-10
1149
113 아이티, 6·25때 한국에 물자지원… 이제 우리가 갚아…
일자: 05-10 | 조회: 1292
2011-05-10
1292
112 통상 가정교사 미국, 이젠 한국이 바로잡아/정의용
일자: 05-10 | 조회: 1424
2011-05-10
1424
111 국제 리더십 공백 속에 맞는 한국 G20/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204
2011-05-10
1204
110 통치는 곧 우선순위의 선택이다/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88
2011-05-10
1188
109 원칙있는 대북포용-파병을/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106
2011-05-10
1106
108 건강한 국민, 병든 정치/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099
2011-05-10
1099
107 새로운 세계질서와 중심국 외교/한승주
일자: 05-10 | 조회: 1353
2011-05-10
1353
106 G20 정상 만찬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임성준
일자: 05-10 | 조회: 1136
2011-05-10
1136
열람중 도시의 미관과 시민의 교통편의/이인호
일자: 05-10 | 조회: 1132
2011-05-10
1132
104 아프리카는 녹색성장의 파트너/정해웅
일자: 05-10 | 조회: 1367
2011-05-10
1367
103 오바마 대통령 방한의 과제/한승주
일자: 05-10 | 조회: 1237
2011-05-10
1237
102 오바마 대통령 방한과 한·미 관계 새 지평/이훙구
일자: 05-10 | 조회: 1307
2011-05-10
1307
101 실용적 대중주의 택한 중국, 체제 안정 지속될 것/윤영…
일자: 05-10 | 조회: 1208
2011-05-10
1208
100 좋은 학교는 없애려는 나라/이인호
일자: 05-10 | 조회: 1237
2011-05-10
1237
99 국가 운영체제 개혁 늦추지 말아야/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29
2011-05-10
1129
98 “30년 학내분쟁 끝… 교수유치-학생양성에 올인”/박우…
일자: 05-10 | 조회: 1427
2011-05-10
1427
97 카메라에 담은 명사 100인의 ‘마음’/윤주영
일자: 05-10 | 조회: 1354
2011-05-10
1354
96 6자회담은 진짜 토끼인가?/한승주
일자: 05-10 | 조회: 1216
2011-05-10
1216
95 하토야마 총리 방한(訪韓) 준비물/정찬원
일자: 05-10 | 조회: 1165
2011-05-10
1165
94 "각 분야 선각자 100명의 모습 담았어요"/윤주영
일자: 05-10 | 조회: 1333
2011-05-10
1333
93 ‘핵무기 없는 세계’와 한반도 비핵화/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82
2011-05-10
1182
92 그랜드 바겐과 북핵협상의 미로/이수혁
일자: 05-10 | 조회: 1231
2011-05-10
1231
91 누가 도덕불감증 중증 환자인가/이인호
일자: 05-10 | 조회: 1159
2011-05-10
1159
90 이산가족 상봉, 몸값 대주기 안 된다/소병용
일자: 05-10 | 조회: 1222
2011-05-10
1222
89 동방예의지국의 부끄러운 ‘폭력 국회’/김정원
일자: 05-10 | 조회: 1215
2011-05-10
1215
88 정보화·특성화·세계화로 '분규 대학' 이미지 벗을 것/…
일자: 05-10 | 조회: 1518
2011-05-10
1518
게시물 검색







한국외교협회 | 개인정보 보호관리자: 박경훈
E-mail: kcfr@hanmail.net

주소: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94길 33
TEL: 02-2186-3600 | FAX: 02-585-6204

Copyright(c) 한국외교협회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1004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