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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패의 깊은 뿌리/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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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8:49 조회1,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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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의 부정과 비리사건 소식이 꼬리를 물며 터져 나오는 가운데 나약한 사람들의 연이은 집단자살 소식까지 겹치니 자기 일에 열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이제 탄식이나 비분강개에도 지쳐버린 듯하다. 이 나라가 이래도 되는가 걱정하다 보면 앞이 노래지고 희망이 안 보이는 듯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앞장섬으로써 정치인으로 입신했고 청렴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구 덕분에 개인적 자질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 정치자금도 아닌 가족의 사익을 위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 지방자치단체나 신용금고의 말단 직원이 몇억 원 횡령한 일쯤이야 사건이랄 것도 없는 셈이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한 가운데서 지금 국민의 마지막 기대는 검찰에 쏠리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정치권의 비리를 뿌리 뽑아 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만 보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은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며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나간 정권의 몇몇 실세들을 감옥에 보내는,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일만으로 정치권의 비리가 뿌리 뽑힐 수 있을까. 부패와 비리에 감염되고 도덕 불감증에 걸린 곳이 정치권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뇌물을 받은 이유는 가난했기 때문이라는 동정론과 함께 현 정권 실세도 결국은 정권교체 후에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전철을 밟으리라는 악담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솜방망이’ 처벌에 비리 불감증

우리 사회에서 부패의 뿌리가 깊어진 가장 큰 표피적 이유는 부패를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미비에 있다. 공직자윤리법이 있기는 해도 내용이 매우 비현실적이고 위반자에 대한 처벌이 혹독하지가 않다. 공직자가 거액의 돈을 받고도 대가성을 부인함으로써 법망을 피해가는 이상한 길이 열려 있고 비리에 연루된 사람도 다시 공직에 오를 수 있는 한 권력형 비리와 부패의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반면에 식사 한 끼 값 정도의 선물을 받아도 처벌한다는 등 비현실적 조항 또한 법을 사문화시키는 구실이 된다. 형식적으로 법이 있어도 국민의 법의식이나 정의감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효과가 없다. 싱가포르에서처럼 아무리 작은 범법행위라도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되고 아무리 상사의 지시나 정당의 이익을 위한 조처라 하더라도 범법은 저지르지 않는다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어정쩡한 처벌은 오히려 동정론을 낳고 법에 대한 냉소나 저항만 강화될 따름이다.

정치적 부패가 만연하는 더 본질적 이유는 무엇이 부패고 비리인가에 대한 인식의 결여와 공사를 구분하는 훈련의 부족이다. 법을 어겨서라도 친구 또는 친척인 자기를 특별히 배려해 주기를 기대하며 인정의 이름으로 비리를 감싸는 사회정서가 뿌리 뽑히지 않는 한 부패는 근절되기 어렵다. 남의 비리는 쉽게 지탄하면서도 직책에 따르는 영향력이나 공금인 판공비로 뿌리는 후의의 효과를 사적으로 거둬들이는 것이 비리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명절 때 받는 선물이 부패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언론인 사이에서도 드물다. 자기가 수혜자가 되었을 때 그 제도의 폐단을 감지하고 인정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비리와 범죄에 관대한 사회심리의 원천 가운데 또 하나는 기존 사회질서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과 부정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는 평생 죽도록 일해도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남들은 운 좋게 한 번의 부동산 매매나 투기 또는 사기로 벼락부자가 되는 모습을 거듭해서 보는 사람은 자기도 힘 있을 때 이권 좀 챙긴다고 그게 죄가 되랴 반문할 수 있다. 압축성장의 뒤안길에서 빚어지는 사회질서의 급격한 변혁은 구성원 대다수에게 자기는 선의의 피해자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불법적 방법으로 보상을 강구하는 데 대해 도덕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그러한 도덕적 불감증이 결국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개인·사회적 양심의 회복밖에는

부패의 깊은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법치의 강화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잘사는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구축을 위해 입법부와 사법부가 서둘러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부패에 대한 더 근본적인 치유는 개인적, 사회적 양심의 회복밖에 다른 길이 없다. 가난은 범죄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당화는 될 수 없다. “나폴레옹은 수백만의 무고한 인간을 죽인 대가로 영웅으로 추대받는데 사회적으로 해악의 존재밖에 되지 않는 전당포 노파 한 사람을 내가 죽이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랴”라는 생각에서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이야기에서 얻는 감동이 장기적으로는 서슬 퍼런 법의 칼날보다 부패의 뿌리를 뽑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셰익스피어의 불후의 명작이 특히 그리워지는 정치의 계절이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동아일보/2009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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