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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외교와 ‘골디락스 법칙’ /한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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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8:43 조회1,7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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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라는 동화가 있다. 금발 소녀 골디락스가 숲 속을 헤매다 아무도 없는 빈집을 찾아 들어간다. 식당에 죽 세 그릇이 있었는데 그중 너무 뜨거운 것도 너무 차가운 것도 아닌 적당한 것을 찾아 먹는다. 침실 침대 또한 세 개 중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폭신하지도 않은, 적당히 부드러운 것에 누워 자다 곰 가족에게 들켜 도망 나오는 이야기다.

대북정책, 강경도 유약도 곤란

서양에선 널리 알려진 이 스토리의 교훈이 과연 중용을 취하라는 얘기인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목전에 두고 골디락스의 우화가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의 외교정책, 특히 한반도 정책에서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말라는 것, 즉 너무 강경하지도 너무 유약하지도 말라고 오바마 당선인에게 주문하고 싶어서이다.

오바마 당선인의 새로운 외교정책은 선거 기간에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외교를 비판하고 다자주의적 외교를 역설했다. 군사력에 대한 편향된 의존을 비판하고 설득력을 중요시하는 소프트 파워를 강조했다. 군사위협 등 전통적 안보 이슈뿐 아니라 환경과 인권 등 인간안보를 강조했다. 국가 간의 협조를 위해서는 동맹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의 연합(coalition of interests)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핵 확산 등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량국의 지도자와 직접면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발 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지금 오바마 차기 대통령으로서는 경제문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2주 후 취임하는 오바마에게는 금융위기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분쟁,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를 포함하는 이른바 ‘위기의 초승달
(crescent of crisis)’ 지역 문제가 대통령으로서 급선무가 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문제는 상대적으로 비중과 우선순위가 다소 낮을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를 시험하기 위해 핵 활동 재개 내지 핵실험으로 도발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당분간 현상유지로 갈 가능성이 크다. 현상유지란 북한의 비핵화를 서두르기보다 북핵문제의 ‘관리(management)’를 선호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핵(무기, 물질, 시설)의 폐기보다는 동결에 만족하고, 문제의 완전 해결을 추구하기보다 위기 회피를 선택하는 정책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가 북한을 설득할 방법도, 강제할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해결보다는 일단 관리에 집중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우리가 기약 없이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바마 진영에는 아직도 북한에 대한 ‘과감한 구상(bold initiative)’을 통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가 2007년 2월 이후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고 유연한 정책을 채택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큰 인센티브를 담은 ‘부시+(플러스)’의 제의를 내놓으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오바마도 다른 일이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북한 문제에 개가를 올려 보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문제는 핵문제에 관한 한 획기적인 제안을 통해 북한을 근본적으로 움직이게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동맹관계 존중하고 강화하길

미국에 대해 우리는 어려운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뒷전(back-burner)으로 미루는 일도, 무턱대고 덤벼드는 일도 바라지 않는다. 북-미 관계 개선을 환영하지만 그것이 북한 핵무기의 묵인을 초래하거나 남북한 관계 진전과 상관없이 추진되는 일은 원치 않는다. 더 넓게는 미국이 다자주의와 국제협조 체제(concert)를 추구하면서도 동맹을 존중하고 강화하기를 원한다. 요컨대 골디락스의 법칙(Goldilocks\' Rule)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동아일보/2009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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