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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 달러 위상 흔들린다지만/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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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8:48 조회1,2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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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패권은 기울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미국 주도의 단일 패권 시대가 끝나가고, 다극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열흘쯤 전, 중국 중앙은행의 저우샤오촨 총재는 웹사이트에 글 한 편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기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으므로 국제통화기금(IMF)의 SDR(특별인출권)로 달러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런 주장을 러시아와 브라질이 지지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는 약 2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의 70%를 달러화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경기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는 사태를 우려할 것이다. 달러 가치가 그만큼 하락할 것이고, 그러면 미국에 막대한 자산을 투자한 중국은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볼 테니 당연히 할 말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측 인사들은 중국 측의 이러한 발언을 언짢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초기에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해 혼선이 빚어졌으나, 곧바로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일부에선 중국 정부 당국이 위안화의 인위적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린 결과 과도한 무역흑자가 쌓였고, 그 돈을 미국 채권에 투자한 것이니 문제의 책임은 중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달러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여전히 강하다면서 미국 주도로 세계 경제위기를 풀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근세사를 보면 세계 패권국들은 자국 통화를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로 삼아 왔다. 19세기의 패권국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키운 산업경쟁력과 해군력의 우위에 기반해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기축통화로 사용, 패권을 유지해 나갔다. 20세기 후반 미국 주도의 패권 질서에서도 미국은 산업기술과 핵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에 더해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왔다. 이처럼 19세기와 20세기의 두 패권국들은 군사 권력, 경제 권력에 더해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할 수 있는 통화 권력까지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세계 경제위기로 미국의 경제 권력이 흔들리면서 통화 권력도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레드 버그스텐은 미·중 간의 비공식적인 G2 파트너십 형성을 제안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에 대해 통화 권력을 중국과 나눠 가지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러한 세계 통화 권력의 이양 논란을 낳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특정 개별 국가의 국내 통화가 세계 통화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다는 데 있다. 세계 통화의 공급은 세계경제 상황을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축통화 국가 일국의 개별적 특수상황과 정책결정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후반 미국은 베트남전 비용 지출, 기업들의 해외 투자, 산업경쟁력 약화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 누적 등으로 달러가 너무 많이 풀려 나갔다. 그 결과 미국발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독일이나 일본 정부의 불만 속에 세계경제는 고스란히 그 후유증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러한 불공평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IMF에서 인조 화폐, 즉 SDR을 발행해 달러를 대체하려 했지만 새로운 변동환율제하에서도 달러는 기축통화 역할을 계속했다. 달러를 대신할 만한 다른 통화도 없었고, 경제 주체들은 결제 수단으로 SDR보다 여전히 달러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달러의 패권적 위상이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달러가 여타의 통화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추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패권과 다극(多極), 그 중간 어딘가가 오늘날의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같은 나라가 섣불리 미국이나 중국 측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해 입장을 정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외교안보 못지 않게 통화 외교에서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신중함은 최대의 덕목이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중앙일보/2009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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