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 언론기고 및 출판





미·중 관계의 역학과 한국의 전략/윤영관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1-05-10 16:01 조회1,386회 댓글0건

본문

자세히 보면 역사에는 아이러니가 많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 위상이 추락하고 있을 때 닉슨과 키신저는 중국을 국제무대로 끌어내 소련을 견제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런데 덩샤오핑은 대미 수교로 유리한 국제환경이 조성되자 이를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를 키우는 계기로 역이용했다. 이제 중국의 국력 성장은 미국인들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

앞으로 한 세대 동안도 미·중 관계가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될 것 같다. 역사상 어느 한 국가의 국력이 급성장하면 기존의 패권국과 부딪치곤 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국력을 키운 영국이 유럽의 제패를 노리는 프랑스와 대결한 것이 나폴레옹전쟁이었고, 통일 이후 급성장한 독일이 패권국 영국과 겨룬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러니 세인의 관심이 미·중 관계의 향배에 쏠릴 만도 하다.

사실 미국은 20세기 초 이래 동아시아에서 세력 균형 정책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 30년대 일본이 중국 대륙을 휩쓸었을 때는 중국과 손잡아 일본을 견제했고, 49년 이후 공산당 정부가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 때는 일본과 손잡아 이를 견제했다. 70년대 이래 중국을 포용해 소련을 견제해 왔는데 91년 소련이 망하고 중국이 급성장하자 이제 중국 견제의 목소리가 등장한 것이다.

중국도 국력 성장을 반영해 동아시아를 자국의 영향권에 편입시키려 해왔다. 특히 90년대 중엽 즈음 외교의 톤을 부드럽게 바꾸기 시작했다. 그동안 불신했던 다자 국제기구도 적극 활용하고, 세계 중요 국가들과 양자관계도 강화해 왔다. 주변국들과의 국경분쟁도 협상을 통해 정리해 나가며 이미지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조용히 확대시켜오고 있다.

이처럼 미·중 양국은 경쟁을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상당 기간 상호협력이 양국 관계의 대세가 될 것이다. 우선 중국은 최고의 우선순위를 경제성장에 두고 있다. 경제성장이 안 되어 실업이 늘어나면 이들의 불만이 공산당 지도부로 향할 터인데, 이는 아주 민감한 정치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은 자본과 기술 유입, 수출시장 모두를 미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에 대미 협력에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국을 끌어안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군사력은 아직 위협이 아니며 13억 인구의 중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복잡한 국제문제들을 풀어나가기 힘들다. 중국을 봉쇄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싶어도 과거 초긴장의 냉전대결 때와는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극 나서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결국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대결보다는 협력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와 중국의 미소(微笑)외교가 중첩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 하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이념적 반발과 민족주의적 감성이 결합해 그런 주장들이 나왔던 것 같다.

정작 우리의 어깨 너머 국제정치의 큰 판에서는 미·중 협력이 대세인데 우리만 양국 대결을 전제로 선택외교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 나라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를 실제 대결의 시점까지, 한국은 그 어느 한쪽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미·중·일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정치에서 더 주변적 위치로 소외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중국의 미소(微笑)외교에 답해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심혈을 기울인다. 일본도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한다. 이들은 이처럼 이념이나 감성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단수 높은 외교를 하고 있다.

이념과 감성에 치우치면 세계정세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어디에 국익이 있는지 보지 못한다. 미국은 우리의 군사안보 동맹이고 중국은 협력 파트너다.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외교환경을 조성하고, 그 맥락에서 국내 개혁과 북핵 해결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이었을 터다.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중앙일보 칼럼/2008년 3월 17일

 


Warning: Use of undefined constant php - assumed 'php' (this will throw an Error in a future version of PHP) in /home1/page87/public_html/kcfr20/skin/board/basic_book/view.skin.php on line 18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7건 15 페이지
회원 언론기고 및 출판 목록
번호 제목
27 객관성·공정성 결여한 앰네스티/김용규
일자: 05-10 | 조회: 1500
2011-05-10
1500
26 특급호텔에는 반드시 한식당을/임성준
일자: 05-10 | 조회: 1359
2011-05-10
1359
25 미국의 외교, 어디로 가나/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218
2011-05-10
1218
24 독도 문제, 한 차원 높게/공로명
일자: 05-10 | 조회: 1353
2011-05-10
1353
23 북한 비핵화에 가로놓인 난제들/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308
2011-05-10
1308
22 쇠고기 파동서 본 세계화와 민주주의/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210
2011-05-10
1210
21 포용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소병용
일자: 05-10 | 조회: 1345
2011-05-10
1345
20 ‘핀란드 화’가 우리의 장래일 수는 없다./소병용
일자: 05-10 | 조회: 1420
2011-05-10
1420
19 <국정쇄신안 ‘윤곽’>“대통령·참모 의사소통 돼야”/홍…
일자: 05-10 | 조회: 1279
2011-05-10
1279
18 한일관계의 재인식/홍순영
일자: 05-10 | 조회: 1394
2011-05-10
1394
17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211
2011-05-10
1211
16 한·중관계의 재인식/홍순영
일자: 05-10 | 조회: 1322
2011-05-10
1322
15 '카스피해 유전개발' 동참의 의미/태석원
일자: 05-10 | 조회: 1519
2011-05-10
1519
14 마잉주 집권 대만과 한국/손훈
일자: 05-10 | 조회: 1445
2011-05-10
1445
13 한·미 관계, 2003년과 지금/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335
2011-05-10
1335
12 새터민 정책을 업그레이드해야/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357
2011-05-10
1357
열람중 미·중 관계의 역학과 한국의 전략/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387
2011-05-10
1387
10 재일 한국인에게 지방참정권 부여해야/정찬원
일자: 05-10 | 조회: 1500
2011-05-10
1500
9 Attaining smart power/김재범
일자: 05-10 | 조회: 1322
2011-05-10
1322
8 박길연·이철 북한 외교관의 추억/박수길
일자: 05-10 | 조회: 1979
2011-05-10
1979
7 한·미관계의 재인식/홍순영
일자: 05-10 | 조회: 1432
2011-05-10
1432
6 선진한국의 외교/홍순영
일자: 05-10 | 조회: 1680
2011-05-10
1680
5 새정부 ‘실용외교’에 거는 기대/박수길
일자: 05-10 | 조회: 1622
2011-05-10
1622
4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상(像)을 위하여/이강원(김승영 회원…
일자: 05-10 | 조회: 1624
2011-05-10
1624
3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박동진
일자: 05-10 | 조회: 1644
2011-05-10
1644
2 통일부와 외교부/홍순영
일자: 05-10 | 조회: 1639
2011-05-10
1639
1 미국이 지도자 국가가 되는 이유/홍순영
일자: 05-10 | 조회: 2079
2011-05-10
2079
게시물 검색







한국외교협회 | 개인정보 보호관리자: 박경훈
E-mail: kcfr@hanmail.net

주소: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94길 33
TEL: 02-2186-3600 | FAX: 02-585-6204

Copyright(c) 한국외교협회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1004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