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태익 / 고르바초프 라이사를 잃는 것이 러시아를 잃는 것보다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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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4-05-20 11:20 조회4,1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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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시 : 2014.05.20 05:37
과연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공동묘지에는 러시아 정치·경제·문화·예술·스포츠 등 모든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총망라되어 묻혀 있었다. 유엔에서 신발을 두들기며 기세등등하게 연설하던 소련 개혁의 선구자인 흐루쇼프 서기장, 우리 기억에 생생한 그로미코, 몰로토프, 미코얀 외상, 안톤 체호프, 투르게네프 등 저명 문인, 무소르그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저명 음악가,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고르바초프 서기장 부인 라이사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명사들과 필자는 묵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묘지에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조각들이 설치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라이사 여사의 묘지에는 실물 크기로 처녀 때의 모습이 조각된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고르바초프, “라이사를 잃은 것이 러시아를 잃은 것보다 더 슬프다” 수도원 방문으로 첫 주말을 보낸 필자는 곧이어 러시아 정부, 의회, 종교, 언론, 외교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주요 인사에 대한 예방을 시작하였다. 대사 부임 인사의 목적으로 만난 저명한 인사 중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있었다. 고르바초프재단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찾아갔는데,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뒷면에 걸려 있는 라이사 여사의 초대형 초상화가 제일 먼저 시선을 끌었다.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라이사 여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부임하여 제일 먼저 찾아뵌 분이 라이사 여사입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우아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평화롭게 계시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2004년 10월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관저에 초청하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이때까지만 하도 북한의 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대화 진전에 대해 낙관하고 있었다. 원래 예정된 면담 시간은 15분이었다. 그런데 라이사 여사에 대해 언급한 것이 우호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필자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고르바초프, 톨스토이 말 인용 “동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진리를 거부하는 것”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변하였다. ▲2001년 3월 크렘린궁에서 신임장을 제정한 후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필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배경은 트럭기사였다? ‘타임’이 ‘세기의 인물(man of century)’로 선정할 만큼 세계 구도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필자는 이런 질문과 답변도 나누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 의지의 뿌리가 오래 숙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공산체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서방과 경쟁할 수 있도록 개방과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소련의 해체로 나타났다. 실패한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내에서의 인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서방에서 시장경제의 확대와 세계화와 자유화를 가져온 세기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의도와 결과가 너무도 다른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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