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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생각하는 민주국가의 위기 / 이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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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8-16 14:56 조회1,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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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8·15에 생각하는 민주국가의 위기

[중앙일보] 입력 2011.08.15 00:09 / 수정 2011.08.15 00:09


광복절 아침, ‘나라는 망했어도 강산은 그대로며(國破山河在)’라는 두보(杜甫)의 시(詩) 춘망(春望)의 첫 구절이 문득 떠오른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나라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원초적인 생각을 해야 할 만큼 천하대세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리라.

 우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어둡고 괴로웠던 36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는 망했지만 민족과 강산은 남았으니 어떻게 하든 국권을 회복하려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선열들의 애타던 심정이 어떠했을지. 민중이 함께 만세를 외쳤던 3·1운동, 약자의 설움을 힘들게 겪은 뒤에야 찾아온 8·15 해방과 광복의 감격,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며 독립을 만방에 선포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리고 이를 지켜내기 위해 치른 6·25전쟁의 엄청난 희생을 되짚어 본다. 이렇게 어렵사리 만들고 지켜온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입법·사법·행정·중앙·지방을 모두 포함한 국가 운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8·15를 맞는 우리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것이다.

 국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현상은 지난 한두 해 사이에 전염병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국도 예외지대일 수는 없다. 그러기에 왜 많은 국가가, 특히 민주정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이러한 불안정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2008년 시작된 자본시장의 파탄과 경제 불황의 책임을 일차적으로는 은행과 대기업의 무절제한 욕심, 방만한 경영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시장의 세계화가 수반한 호황의 시대가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가 국가 부도나 파산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급기야는 미국조차도 신용등급 하락에 이르면서 위기의 궁극적 성격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와 국가라는 결론으로 중론이 모아지고 있다.

 국가 운영을 상습적으로 적자 예산에 의존하게 된, 즉 수입보다 높은 지출을 관행으로 만들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게 그로 인한 후유증과 대가를 경고하는 것보다 정치적 경쟁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민주정치의 본질적 취약성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은 곧 민주정치 자체의 정통성과 효율성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하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위기와 적자 운영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조차 민주정치의 극심한 한계성을 미국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공공보조의 혜택을 얼마나 감축할 수 있을지 또 개별국의 주권을 얼마나 제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민주적 합의나 정치적 타협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민주국가들도 정치적 리더십, 제도, 문화에 대한 총체적 반성과 개혁 없이는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을 내딛기 어렵다는 방향으로 국론이 모아지고 있다.

 동서 냉전의 어려운 역사의 고비를 넘어오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우리 국민은 분명 조국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 수습되지 못한다면 나라가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고생하며 힘들어하는 많은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마음을 열고 힘을 모을 때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대결과 분열의 조짐이 커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따라서 통합의 능력을 발동시키는 민주정치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헝가리 국민은 1956년 혁명을, 체코 국민은 68년 프라하의 봄을 회고하며 오늘의 과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려 힘과 지혜를 모은다고 한다. 4·19혁명으로부터 이미 반세기를 넘긴 우리가 남들에게 뒤처질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나라는, 특히 민주국가는 어느 누구의 사익(私益)보다도 모두가 함께 잘사는 공동의 이익, 즉 공익(公益)을 우선해야만 된다는 원칙에는 이미 모든 국민이 합의하고 있다. 이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공적 권위가 존중될 때 나라는 안정되게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모두가 공익을 위한 희생을 나눠 감수하겠다는, 그리고 꿈과 희망과 아픔까지도 함께 나누자는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곳곳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무리 천하대세가 어지럽더라도 이러한 나눔의 공동체인 대한민국의 앞날을 가로막지는 못하리라.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스크랩주소(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8/15/5624857.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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