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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신동원 / '북방외교 시초' 한ㆍ헝가리 수교 마침표를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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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3-08-16 23:43 조회1,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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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외교 시초\' 한ㆍ헝가리 수교 마침표를 찍다


신동원 전 외무차관
▲신동원 전 외무차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신동원 전 외무차관이 31일 신라호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북방외교\'의 시초가 된 한.헝가리 수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2.12.31 airan@yna.co.kr

1988년 공식 수교 앞두고 난항..신동원 前차관, 헝가리서 막판 교섭

"헝가리측 탐색 정보로 소련 수교 추진 자신감도 얻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동원 신, 나랑 잠시 갈 곳이 있습니다"

1988년 12월 28일 밤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 정부 영빈관 숙소.

헝가리 방문 이틀째의 숨 가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려던 신동원 외무차관은 호른 줄라 헝가리 외무차관의 느닷없는 방문에 당황했다.

신 차관이 무작정 자신을 따라오라는 줄라 차관을 따라 도착한 곳은 그로스 공산당 서기장의 관저였다. 예상치 못했던 심야 예방이었다.

그는 헝가리 최고 실력자인 그로스 서기장과 마주한 순간 헝가리와 공식 수교를 맺는 일이 순조롭게 완료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198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 \'북방외교\'의 시초인 한ㆍ헝가리 공식 수교를 위한 최종 작업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푸른 다뉴브강\'을 넘기 위한 담판 = 신 차관이 헝가리를 방문하기 석 달 전인 1988년 9월 13일 양국 정부는 서울과 부다페스트에 상주 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상주대표부 설치를 이끌어내기까지 \'6공 황태자\'라 불리던 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이 작전명 \'푸른 다뉴브강\' 아래 극비리에 서울과 부다페스트를 오간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헝가리와의 공식 수교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어했다.

하지만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데다가 국내적으로도 개혁·개방파와 보수파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헝가리 정부는 한국과의 정식 수교에 부담을 안고 있었다.

양국은 이 상황을 넘기고 서로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할 모종의 계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외교 최전선에서 활동한 경험이 많은 신 차관이 직접 나섰다.

그는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헝가리 외무부의 공식 초청장을 지참하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대외적 목적인 \'한ㆍ헝가리 투자보장협정 체결\'을 위해 외무부 조약과장까지 동행했지만 실상은 "수교 관계로 발돋움하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신 차관 일행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27일 정오께 부다페스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일행을 태운 차량은 어디론가 한참을 내달렸다. 공항에 마중나온 한탁채 초대 헝가리 상주대표부 대표에게 행선지를 물었으나 한 대표도 알지 못했다.

아무리 탈냉전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해도 미수교 공산국가에 들어가는 것은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헝가리 주재 북한 대사는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이었다.

신 차관 차량이 오후 2시30분께 도착한 의문의 행선지는 호텔이 아닌 헝가리 외무성 청사였다. 일행이 안내를 받아 들어간 회의실에는 줄라 차관을 비롯한 헝가리 정부 관계자들이 죽 앉아 있었다. 짐을 풀지도 않은 채 1차 회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공산국가 법도는 이런가\'하고 의아해하던 신 차관에게 줄라 차관은 "헝가리 방문을 환영한다. 그런데 꼭 한국 측에 물어보고 따져볼 일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줄라 차관은 "한국 신문들이 최근 며칠 \'신동원 차관이 정식 수교를 위해 헝가리를 방문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다"면서 "양국이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았는데 한국 신문이 그렇게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일종의 항의성 발언을 했다.

신 전 차관은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를 숙소가 아닌 외무성으로 바로 데려온 것을 볼 때 \'이 항의를 잘 넘기면 통과되겠지만 잘못 넘기면 타고온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잠시 생각한 다음 웃는 얼굴로 "한국 신문을 다 번역해서 봤겠지만 다들 \'관측통에 의하면\'이라고 썼지, \'신 차관이나 한국 외무부에 따르면\'이라고 쓴 신문이 어디 있느냐"면서 "자유세계에는 \'언론의 자유\'도 있지만 \'추측의 자유\'(freedom of speculation)도 있다"고 맞받아쳤다. 기선 제압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줄라 차관은 웃으며 "알겠소"라고 말했고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신 전 차관은 "헝가리도 우리와 수교할 마음이 있지만 한국 신문이 연일 보도하니 북한과 소련을 의식해 부담스러워 그렇게 나왔던 모양"이라고 회고했다.

◇헝가리의 결정적인 답.."소련도 다 알고 있다" = 신 차관과 줄라 차관은 다음날에도 아침과 점심을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신 차관은 충분히 교감했다고 판단한 뒤 마음에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우리와 수교하는 것에 대해) 소련 양해를 받았느냐"고 슬쩍 떠본 것이다.

이에 줄라 차관은 씩 웃더니 \'받았다, 받지 않았다\'는 말 대신 "그쪽(소련)에서도 다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신 전 차관은 이 당시를 회상하면서 "우리로서는 헝가리 수교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최종 목표는 사실 소련 수교였다"면서 "그런데 \'그쪽에서도 다 알고 있다\'는 답이 우리한테는 큰 전망과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당시 공산국가의 맹주인 소련이 한ㆍ헝가리 수교에 어깃장을 놓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북방외교\'의 종결점인 소련과 수교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도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헝가리의 반응은 즉각 우리 정부에 보고됐다.

신 차관은 그날 밤 줄라 차관의 안내로 그로스 서기장까지 만나게 됐다. 그로스 서기장은 이 비밀 회동에서 "이제 한국도 헝가리와 우호협력하고 수교하자"는 뜻을 밝혔고 신 차관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 차관은 29일 출국에 앞서 줄라 차관과 함께 프로토콜에 서명했다.

"1989년 1월 하순 호른 줄라 헝가리 외무차관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실은 서울에서 양국 공식 수교를 공동성명으로 발표하기 위한 방한을 약속한 것이다.

양국은 줄라 차관이 이듬해 1월 29일 방한한 뒤 2월 1일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같은 일자로 상주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했다.

우리와 공산권 국가의 첫 수교가 이뤄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해 폴란드, 유고슬로비아와 릴레이 수교를 이어갔고 1990년에는 소련과도 수교했다.

신 전 차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헝가리 수교를 중국이나 소련 수교가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면서 "40년간 서방체제 일변도였던 우리가 외교 지평선을 넓혀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의 시작이 헝가리였다"고 강조했다.

◇신동원 전 차관 =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한 외교 협상 현장에서 뛰었다.

외무부에 들어온 뒤 일본주재 한국대사관 서기관으로 한일회담 실무를 챙겼다. 외무부 차관을 지내면서 헝가리 수교 협상을 마무리 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마지막 서독 주재 대사로 파견되면서 독일 통일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고 통일독일 초대 대사도 지냈다. 퇴임 이후에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유치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월드컵 유치에도 기여했다.

▲경기 용인(79) ▲외무부 동북아 과장 ▲외무부 국제경제국장 ▲멕시코ㆍ니카라과ㆍ인도ㆍ서독ㆍ독일 주재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외무부 차관 ▲2002월드컵축구대회유치위원회 부위원장

aira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2/12/31 07:01 송고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special/2012/12/29/1438010000AKR20121229045800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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