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태익 / 유성환의원 발언으로 미국 발칵 뒤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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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3-12-30 15:34 조회3,6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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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익 전 청와대외교수석의 외교비사④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합니다.” 이 짧은 발언이 정국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당장 여당 단독으로 체포 동의안이 통과되어 유 의원은 영등포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반공 국시는 5.16 직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6개 항의 성명 중 첫 번째 항인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에서 비롯되었다. 김경원 대사 부재로 필자 일행이 국무부 방문 미국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성환 의원의 구속 사실을 보도하면서 체포 동의안 통과로 한국의 정국이 급격히 경색될 것임을 예고하였다. 유성환 의원에 대한 재판은 필자가 외무부 총무과장에서 1987년 2월 주미한국대사관 정무참사관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할 때까지도 계류 중이었고, 이 사태는 미국 조야에서도 큰 관심사가 되었다. 야당인 신민당은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 과정에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둘러싸고 정치적, 사법적 공방이 잇따라 벌어졌다.
당시 일부 언론은 한국 정부와 여당이 유 의원 소속의 신민당 해체를 고려하고 있다고 특종 보도를 한 바 있다. 유성환 의원 사태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더욱 심각한 사태로 발전하자 국무부의 시거 차관보실에서 대사관으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 있으니 김경원 대사가 긴급히 국무성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는 요청이 들어왔다. 마침 김경원 대사가 지방도시 출장 중이어서 할 수 없이 당시 H 정무공사와 정무참사관인 필자가 국무부로 대신 들어갔다. 미 국무부가 우리에게 통보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 정부가 유성환 의원을 개별적으로 징계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이를 빌미로 공당을 해체하는 조치를 검토하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정당정치를 말살하는 조치이므로 미국 정부는 이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미국무부는 이 사안으로 향후 한국 내부가 통제 불가능한 소요사태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정당 해체 검토 방안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정당 해체를 강행한다면 미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의 방침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하겠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수위의 메시지였다. 이 자리에서 H 공사는 “주미한국대사관은 본국 정부로부터 신민당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은 바 없다. 따라서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여하튼 면담내용을 본국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선교사를 자처하고 민주주의 수출을 외교의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던 미국은 당시 한국 정부와 여당이 국회의원의 회기 중 발언을 문제 삼아 정당 해체를 고려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을 주미한국대사관을 통하여 한국 정부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통보였으며 만약 외부로 알려진다면 미국이 한국 내정에도 관여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외무장관과 안기부장관 주도권 싸움으로 미국 정부의 이러한 직설적 입장 통보는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대사관의 수장인 김경원 대사의 부재 중에 본국에 긴급히 보고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 벌어졌다. ▲ 1987년 8월 23일 개스턴 시거 미국무성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최광수 외무장관을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상사인 H 공사의 견해가 우선되었다. 사안의 중대성은 인정되지만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사안이 아니므로 보고 방식과 시기는 공사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H 공사가 안기부 소속 N 공사에게 구두로 사안을 미리 알려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면담 내용을 청취한 N 공사는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에게 당장 직보하였다. H 공사는 정당 해체와 같은 정치적 이슈는 외교 문제가 아닌 데다 외무부가 결정할 수도 없는 사안이므로 일부러 안기부 공사에게 먼저 알렸다고 나에게 추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아무리 외무부의 책임과 권한을 넘어선 사안이라 할지라도 대사관의 보고는 있는 그대로 외무부장관에게 보고하고 안기부장에게 사본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지금도 그와같은 일처리가 옳다고 생각한다. ▲ 1995년 11월 27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집을 찾은 장세동 전안기부장 모습. 관계장관회의가 끝나고 외무부에 후폭풍이 불었다. 주미대사관 면담 보고를 제일 먼저 받고 회의를 주도했어야 할 최광수 장관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노발대발하였다는 후문이다. 결국 H 정무공사는 최장관의 대학 동창이고 오랜 친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 즉시 소환되었고, 정무참사관인 필자에게는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내정과 외교, 과거와 현재의 대화 결과적으로 정부의 이러한 내부 조치로 국내의 정국은 혼란과 4.19와 같은 소요사태없이 조용히 진정되었다. 하지만 만약 이 일화가 언론에 노출되었다면 미국의 내정 간섭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미국의 대한국 정부 조치는 옳고그름을 떠나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필자는 한국의 민주화는 앞의 사례에서 봤던 바와 같이 국내의 내부 동인과 국제사회 외부의 반응이 함께 어우러져 진보하고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당시부터 세계는 이미 지구촌화가 시작되어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확산되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권위주의적 통치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늘의 북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독제체제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이 되고 있는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폐쇄의 장벽을 높이 쌓아도 북한은 결국 외부 세계와 소통하면서 서서히 변화될 것이다. 역사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변화와 수많은 가능성에 의한 창조와 파괴의 연속 엮어진 역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한편 국시 발언의 주인공인 유성환 의원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9개월 동안 수감됐던 유 의원은 얼마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계속된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유 의원의 행위는 면책특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찰에 공소권이 없다고 판결했고, 199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유성환의원의 사건은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입법취지와 근본정신은 국화가 독립성을 가지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헌법 정신을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모범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7/2013122703446.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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