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문학> 이경구 /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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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6-04 16:03 조회8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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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문학] 북소리 ...이경구
우리 마을 앞에는 ‛SCHOOL BUS STOP HERE’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노랑 버스가 와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태우고 내리는 곳이다. 어린이들이 학교 버스를 타고 학교에 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학교에 다녔던 시절이 제일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워싱턴대학 동아시아도서관에서 2013년 6월부터 한국인 학생들과 동포들에게 한국인의 신간 서적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북 토크 행사를 한다는 한국신문 기사를 읽었다. 이름이 ‛북:소리’이며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한단다. 영어 명칭은 ‛Booksori’이다.
날씨가 청명한 2015년 9월 12일 오후, 우리 부부는 유니온 호수 너머에 있는 워싱턴대학 고웬홀 동아시아도서관을 네 번째로 찾아갔다. 제28회 북소리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세미나실에서 프로젝터를 점검하는 이효경 한국학 사서를 만나니, 북소리 홍보를 하며 행사를 준비하는 노고가 그지없이 고맙웠다.
1시 30분이 되자 이효경 씨가 이매자 여류 소설가를 소개하였다. 이매자 연사가 앞에 나와서 『The Voices of Heaven』을 보이며 자기가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였다. 책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하늘의 목소리』이다. 1943년에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트럭 운전사 집으로 입양되었다.
쌍둥이가 태어날 경우에는 풍습에 따라 여아는 아이가 없는 집안으로 보내졌다. 양아버지가 첩을 두자 동네 사람들은 “네가 여자로 태어나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하였다. 옛날 유교적 폐습에 얽혀 살았던 여자들과 첩의 아들로 태어난 동생 이야기를 10년에 걸쳐 썼단다.
나는 미주리주에서 살고 있는 이매자 소설가에게 나의 자전적 수필집 2권을 보내 주었다. 그러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이야기도 영어로 써 보기를 권하였다. 이매자 씨는 나에게 감사의 카드와 함께 자기가 쓴 시집 한 권과 자기가 만든 ‛거북선 책꽂이’를 보내 왔다.
2016년 1월 16일 오후, 날씨가 궂은데도 우리 부부는 위싱턴대학 코웬홀 북소리 세미나실에 갔다. 이효경 사서는 시청자가 하도 많아서 강연 장소가 301강의실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미국인 남학생이 일어나 나에게 의자를, 다른 여학생이 아내에게 의자를 양보해 주었다.
탈북 인권 운동가라는 박연미 연사가 연단에 나왔다. 워싱턴대학의 ‛THINK(The Human Rights in North Korea)’라는 북한 인권동아리와 동아시아도서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북소리 행사에 나온 연사는 용모가 어리고 키가 훤칠해 보였다. 시청자는 350여 명이 되었고 통역은 한국인 학생들이 맡았다.
박연미 씨는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나머지 2007년 3월 어머니하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탈출했다고 한국어로 말하였다. 중국 땅에 도착하니 브로커와 인신 매매 업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북한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인정머리가 없는 그들의 협박으로 어머니는 650불 연미는 2,000불보다 낮은 값에 팔려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천신만고를 겪다가 2009년 3월 손전등과 면도칼과 독약을 품에 넣고 몹시 추운 밤에 북녘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을 향해 발길을 옮겨서 고비사막을 넘어 몽골 땅으로 들어갔다. 피난민 수용소에 있다가 그해 4월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단다.
북한 인권동아리에서는 시청자 5명을 추천으로 뽑아 저자의 서명이 담긴 『In Order to Live: A North Korean Girl’s Journey to Freedom』이라는 책을 나눠 주었는데 나도 받았다. 내용인즉 박연미 연사의 목숨을 건 북한 탈출 서사문이다. 책을 받고 또 사진도 함께 찍게 한 답례로 「정치란 의식의 넉넉함에 있다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써서 동포가 하는 온라인 신문에 기고하였다.
오늘은 2017년 4월 15일이다. 기다리던 북소리 날이다. 우리 부부는 오후에 워싱턴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세미나실을 찾았다. 이효경 씨가 김진숙 한국 노동 운동가와 함께 들어왔다. 한국 노동 문제 연구가이며 『소금꽃 나무』라는 저서도 가지고 있단다.
안경을 낀 김진숙 연사가 나와서 “저는 1981년 7월 한진중공업 용접공이 됐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 되었단다. 한진중공업이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하자 2011년 1월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간 농성을 벌여서 회사와 노조가 타결을 보도록 하였다. 1986년 7월 어용 노조 축출 때문에 해고된 후부터 30여 년 간 노동 운동을 하고 있다.
김진숙 연사는 비정규직 문제, 억울한 감방 생활, 용역 깡패들의 행패, 빈대가 우글거리는 기숙사, 초과 노동 강요 등을 고발하고 노조 활동의 당위성을 호소하였다. 작업복이 땀에 젖었다가 마르면 그곳에 하얀 땀 자국 곧 ‛소금꽃’이 핀단다. 대학생이 되는 것이 꿈이라던 연사의 저서를 사서 펼쳐 보니 수갑을 찬 채 웃고 있는 흑백 저자 사진이 실려 있다.
아내와 더불어 워싱턴대학 코웬홀을 나와 잔디밭 길로 들어서니 해가 어느 사이에 서쪽 시가지 위에 떠 있다. 늘그막에 보는 하루해가 지는 풍경은 어디서 보아도 엄숙해 보인다.
이경구
수필가. 1998년 <한국수필> 등단
작품집: 소렌토 아리랑, 시애틀의 낮달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현재 위싱턴주 뷰리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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