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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손선홍 / 통일과정의 논쟁점에 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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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6-04 16:48 조회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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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일 과정의 논쟁점에 대비하고 있는가?

 

 

한반도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제4차와 제5차 핵실험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각종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며 핵·미사일 위협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가능성이 적어 긴장은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의 통일 준비는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 준비 과정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 중 몇몇 주요 문제들로 ▲‘신속한 통일’ 또는 ‘점진적인 통일’의 문제 ▲통일한국의 수도와 국회 및 정부의 소재지 문제 ▲통화 통합 시 교환비율 문제 ▲북한 내 재산(토지)의 소유권 문제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문제 등이 있다. 과거 독일 사례와 비교해 살펴보고자 한다.

점진적 통일인가? 신속한 통일인가?

우선 ‘신속한 통일’ 또는 ‘점진적인 통일’에 대한 문제다. 과거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통일 추진의 기회라고 판단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1989년 11월 28일 ‘독일 분단과 유럽 분단 극복을 위한 10개 방안’을 발표하며 통일 추진을 선언했다. 콜 총리는 통일을 3~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고자 했다. 준비가 부족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와 소련 전승 4개국의 동의를 받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 들어 콜 총리는 ‘신속한 통일’로 선회했다. 우선 동독 주민의 지속적인 서독 이주와 재정 파탄으로 동독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조속히 안정시켜야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재임 중에 통일을 이루어야 했다. 소련의 해체 움직임으로 고르바초프의 장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콜의 ‘신속한 통일’ 방안은 1990년 3월 18일 실시된 동독 최초의 자유 총선에서 ‘독일 동맹’이 승리함으로써 탄력을 받았다.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정확히 10개월 24일 만인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루었다. 콜 총리의 ‘신속한 통일’ 방안은 결국 옳은 결정이었다. 통일은 ‘점진적’으로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독일 통일은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 통일 과정을 가능한 한 짧게 하여 신속히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통일된 독일의 수도와 의회 및 연방정부의 소재지 문제다. 분단국가의 통일에 수도, 의회와 중앙정부가 어디에 소재할 것인지는 분단국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이 수도는 물론 의회와 연방정부의 소재지가 되기를 희망했다. 주민들의 희망을 반영하여 1990년 7월 초 ‘통일 조약’ 협상에서 로타 드 메지에르 동독 총리는 베를린이 수도가 되어야 하고, 의회와 연방정부도 소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볼프강 쇼이블레 서독 측 수석대표(내무장관)는 수도로 베를린을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의회와 연방 정부의 소재지는 통일 전에 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방정부와 의회의 소재지로 본(Bonn)을 선호하는 주민들이 많아 이러한 내용이 ‘통일 조약’에 들어가면 서독 의회에서 비준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결국 동·서독은 수도는 베를린으로 하되, 의회와 연방정부의 소재지는 통일 이후 의회가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이 조약에 따라 연방하원은 1991년 6월 20일 베를린을 의회와 연방 정부의 소재지로 결정했다.

우리의 통일 과정에서도 국회와 정부의 소재지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시에 그대로 두는 방안, 서울, 평양, 개성 또는 제3의 도시를 정하는 방안이 있다. 중요한 점은 국회와 정부를 떼어놓지 말고 두 기관을 반드시 한 곳에 두도록 해야 한다. 정부만 세종시로 옮겨 심각한 행정 낭비 현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동·서독 통화 통합 시 교환비율의 문제다. 서독은 늘어나는 동독 이주자를 줄이고 동독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통일에 앞서 동독과 화폐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는데, 교환비율이 문제가 됐다. 동독과 서독 화폐의 환율은 ‘4~5:1’이었으나 동독은 ‘1:1’로, 서독 재무부와 연방은행은 ‘2:1’로 하고자 했다. 1990년 5월 18일 체결된 ‘통화·경제와 사회통합 조약’에 따라 7월 1일 독일 마르크(DM)가 단일 통화가 되었다. 또한 임금, 급여, 보조금, 연금, 임차료에 대해 교환비율을 ‘1:1’로 했다.

‘1:1’ 교환으로 동독 이주민이 줄어들고, 동독이 안정을 되찾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동독 기업들에게는 독(毒)이 되었다. 근로자의 생산성이 낮은데다 ‘1:1’ 교환으로 임금이 오르면서 상품가격도 올라 동독 제품이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과다 고용되었던 근로자들이 해고되면서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실업수당 등 사회보장비가 많이 발생했다. 통일 이후 20년 동안 소요된 약 2조1천억 유로의 통일비용 중 52.4%인 1조1천억 유로가 사회보장비로 지출될 정도였다. 향후 남북 화폐와 경제통합 시 개인과 기업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몰수 재산(토지)의 소유권 문제도 있다. 소련은 동독 지역 점령기간 중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토지개혁을 했다. 100㏊ 이상을 소유한 대지주, 나치주의자와 전쟁 범죄자의 토지를 보상 없이 몰수한 것이다. 동독 정부도 토지를 몰수했다. 1990년 들어 통일 가능성이 커지자 재산을 강제로 몰수 당한 이들은 반환을 요구했다. 서독 정부는 몰수된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고자 했지만 동독과 소련의 이의 제기로 완전한 반환이 불가능해졌다.

몰수된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동·서독 정부는 이 문제를 1990년 6월 15일 ‘미해결 재산 문제의 규정에 관한 공동 성명’을 통해 해결했다. ‘소련이 점령기간 중 점령법적인 또는 점령당국의 특권으로 몰수한 재산은 원상 회복되지 않는다’, ‘1949년 10월 7일 이후 동독 정부가 몰수한 토지는 원칙적으로 원소유주에게 반환한다. 다만 고용을 유지하고 창출할 목적인 경우에는 토지나 건물이 원상 회복되지 않는다’의 내용이다. 이처럼 동독과 소련의 반대로 소련 점령기간 중 몰수된 재산은 원소유주에게 돌려주지 못하게 됐다. 소련은 북한에서도 토지개혁을 하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 또한 북한 정권도 토지 몰수 조치를 했다. 몰수되었거나 두고 온 북한 내 재산(토지)의 소유권 문제는 통일 과정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통일된 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잔류 문제가 있다. 통일된 독일의 나토 잔류 문제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서독은 나토에 남아있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유럽의 한복판에 위치한 독일이 중립국이 된다면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불안하게 한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했던 서독으로서는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해야 했다. 결국 나토 잔류 문제 등 대외적인 문제는 1990년 7월 15~16일 콜과 고르바초프 간의 모스크바와 정상회담에서 해결되었다. 고르바초프가 통일된 독일이 자유롭게 동맹기구를 선택할 권한을 인정한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나타날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논의가 예상되는 주요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통일 과정에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통일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또 대외적으로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에 달려있다.

손선홍 /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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