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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박병환 / 러시아가 필요하다 (20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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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3-23 09:35 조회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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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필요하다
[러시아 바로보기] ⑪

                                                                                    최종수정 2020.03.18 13:41:13 |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라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국처럼 비우호적인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 가운데 누구와도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기가 어렵다. 이웃 나라들의 관계도 그러하다. 중국과 일본은 언제든지 충돌할 수 있는 관계이고 러시아도 주변국들과 관계가 원만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 밀착관계인 것처럼 보이나 역사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근의 상황은 양국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이다. 작년 말 국민과의 대화에서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 않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에 거칠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보다 작은 나라이나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의 소국들은 편하게 소통하고 뭉칠 수 있는 이웃들이 있다. 반목과 충돌의 과거가 있고 현재도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일이 많은 이웃들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미국을 혈맹이라고 하나 한국인들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미국인들도 과연 한국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거기다가 같은 민족이지만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까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학자들은 한국의 처지를 '지정학(地政學)의 저주'라고 표현한다. 지정학이란 쉽게 말하면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느냐가 나의 삶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말인데 개인이라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 있으나 나라는 이사 갈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 사이도 그렇듯이 나라와 나라 사이도 어느 정도 국력이 비슷해야 진정한 우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그간 한국 정부가 특히 경제 관료들이 국내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 주요 산업의 국제사회에서의 순위 등 거시지표에 대해 1960년대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한강의 기적' 또는 '코리안 미러클'을 말하고 있다. 2010년 G20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정부는 '대한민국, 세계의 중심에 서다'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과연 한민족 국가의 국력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는가? 국력이란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를 전제로 하여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50년 전에는 내가 남보다 얼마나 크거나 작았는데 오늘에 와서는 그 격차가 얼마나 줄었느냐 또는 역전되었느냐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힘이 중국을 압도하거나 대등해졌는가? 일본,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비교하여 어떠한가? 이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19세기 말과 비교할 때 상대적인 역학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는가?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 비해 작은 나라이고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라가 분단되어 조선시대 말보다 더 열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외로울 뿐만 아니라 '섬나라'이기도 하다. 북쪽이 적대적인 북한에 가로막혀 땅으로 자유롭게 대륙을 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해상 및 항공 교통이 발달한 시대에 배나 비행기로 가면 되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영국과 프랑스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도버 해협을 횡단하는 해저터널을 건설하였으며, 왜 일본은 대한해협 해저 터널을 뚫고 싶어 하고 한국은 그 사업에 그렇게 소극적인가? 땅으로 연결된다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착한' 외세가 있을까?

'착한' 개인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착한' 나라는 상상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어떤 나라 사람들과 관계가 좋다고 그들의 나라가 우리에게 '좋은'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떤 나라를 평가함에 있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유감스럽게도 많이 작용한다. 나라는 수많은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며 그 나라의 정책 결정자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동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가 그 나라의 이익에 반하여 다른 어떤 나라에 '착한' 태도를 취한다면 그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나라는 그들의 지정학적 위치 및 경제 상황 등 주어진 여건에 따라 국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흔히 한국인들이 아니 한국 언론들이 지도자 간 친분 쌓기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매우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생각이다. 한국이 그런 개인적인 친분에 기대를 거는 것 자체를 어리석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이용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이웃나라들로부터 당했던 기억 때문에 상당수 한국인들은 역외국가인 미국은 '착한' 외세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미국 역시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한국인들의 바람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국제정치를 논하면서 종종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21세기에 국가 간 관계에 대하여 여전히 성리학적인 명분과 의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국가는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착한' 외세는 존재하지 않으며, 영국의 파마스턴 수상이 1848년 하원 연설에서 설파하였듯이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소위 좌파 진보진영에서는 중국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갖고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게도 좋은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중국이 '착한' 이웃일까? 19세기 말 청나라도 조선을 넘보았으나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그런 생각을 접었을 뿐이다. 6.25 전쟁 당시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구실로 중공군 수십만 명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의 기회를 놓쳤다.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명나라는 조선을 돕기 위해 참전하였으나 왜군이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게 막는다는 전략적 목표가 달성되자 조선과 사전 협의도 없이 일본과 강화 협상을 하면서 조선 분할을 논하지 않았던가?

1905년 미국도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적 위치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의 영토인 거문도를 점령하기도 했었으며 러-일 전쟁을 부추겼고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하지 않았던가?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나치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일본을 독점 점령하기 위해 한반도 북부를 소련군이 점령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던가? 러-일 전쟁 때 러시아 역시 조선 지배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북한 공산정권의 수립을 지원함으로써 남북분단을 야기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나라는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지구상에 한국을 위하고 생각해 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품은 괴롭고 중국의 품은 안온할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미국과 더불어 소위 G2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르겠으나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한국인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소위 우파 가운데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일부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으며 중국 경제의 붕괴 내지는 중국의 분열이 머지않았다고 주장한다. 한편 소위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중국의 부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문제는 미국이 물러남으로써 해결될 것이며 한국은 중국의 번영에 편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한-미 간 합의, 예를 들어 사드 배치,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을 반대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점령군으로 진주하였던 미군은 군정 3년간 일제에서 해방된 한민족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새 나라의 비전을 세우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북한의 전쟁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대가로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던가? 물론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이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상당수 한국인들은 70여 년 지속된 미국의 개입에 익숙한 나머지 미국이 후견인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그간 같은 민족인 북한과의 대립과 갈등이 불러들인 외세의 개입, 그러한 비정상 상태를 정상 상태로 인식하고 진정한 정상상태로 바뀌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행태를 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미국과의 혈맹을 외치며 모든 일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적화통일이 될 것처럼 '한미동맹 강화만이 우리의 살길' '피 흘려 지켜낸 자유대한! 동맹 파괴는 여적죄!' 와 같은 구호를 외치고, 미국대사관 바로 앞에서는 'South Korea wishes to be a 51st state of the United States' 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들고 미국에게 호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한편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공개적으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수용하라고 압박했다고 해서 미국대사관 앞에서 해리스 대사 참수 및 코털 뽑기 퍼포먼스가 열리기도 하고 신발을 벗어 대사관 건물을 향해 던지기도 한다. 또한 일단의 과격한 대학생들이 미국대사 관저의 담을 넘어 들어가 해리스 대사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미국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행태나 미국 기관이나 인사에 대해 사실상 폭력을 행사하는 것, 모두 한-미 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하더라도 무절제한 감정 표출이나 과격한 행위는 단지 미국 측을 불쾌하게 하고 우리 측의 반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오기를 부리게 할 뿐이다. 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를 적절히 보호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기관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체약국인 외교공관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물론 해리스 대사가 주재국인 한국 정부에 본국의 지시를 전달하는 방식이 외교관으로서 적절하였느냐는 별도로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면 미국의 후견 아래 지나온 세월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해서 중국의 품이 안온할 것인가? 현재 중국의 대외적인 행태를 보면 아직도 그들은 국제관계에 대해 전근대적으로 국가와 국가 관계를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 이웃나라의 관계는 이웃나라가 중국에 복속하는 것이지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 여러 면에서 한국이 중국에 의해 마구 휘둘릴 정도의 나라는 아닌데도 기회만 있으면 중국은 한국을 길들이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 수출의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20%가 훨씬 넘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의 반응과 제재 조치를 보면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중국 쪽으로 기우는 순간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일들이 되풀이될지 모른다. 특히 임오군란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지 조선에 와있던 청나라의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조선 조정을 쥐고 흔들었는지 역사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우리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면 미국 대사관 앞에서 그렇게 거칠게 항의를 하면서도, 중국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한 발언이 공개되었어도, 시진핑이 중국을 방문한 우리 대통령을 홀대하거나, 왕이 외교부장이 우리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중국 공안이 통제하는 보안요원들이 한국 기자들을 무차별 폭행해도 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 앞에서 제대로 된 항의 시위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할 말을 못하니, 추궈홍 당시 주한 중국대사가 국회에 와서 '미국이 한국에 중국을 겨냥하는 전략적 무기를 배치한다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협박하거나, 2월 초 부임한 싱하이밍 대사가 주재국 국가원수에 신임장을 제정한 후에 대사로서의 공식 활동이 허용되는 국제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부임하자마자 기자회견을 갖고 코로나19 관련 사과의 말은커녕 일부 중국인들에 대한 입국 제한조치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등 우리를 얕보는 언행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 대통령에 대한 국내 여론을 왜곡하려고 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구체적인 정황증거도 나왔는데 한국 언론은 이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중국 정부가 언론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친중국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 대통령이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였으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이런 발언은 상대국에 대해 외교적 수사로도 결코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중국과의 운명공동체론도 나왔는데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중국과의 일체감으로써 그간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수없이 자존심이 상하였던 데 대한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인가?

한국은 북한과 굳이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7년 한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이웃국가들은 남북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선 미국부터 보자. 미국이 한국 방위를 위해 미군을 주둔시키고 그간 경제발전을 도왔던 것은 냉전 시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최전선 기지로서 한국이 유용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남북한 분단 상태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한국에 대한 미군 주둔의 명분이 되었다.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하고 통일로 나아간다면 미국으로서는 반대할 명분은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통일은 미국의 큰 관심사는 아닌 것이다. 한반도 상황과 관련하여 미국은 북핵 제거에만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이 통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는데 안보 위협만 사라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질문이었을 것이다. 통일된 한반도가 어떤 외교 노선을 취할지는 장담할 수 없으므로 미국으로서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할 것이고 이런 입장은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발언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미국에 대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사학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동북공정에 따라 현재 북한 지역이 과거 중국(漢나라)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세기 중국의 그런 인식이 갖는 의미는 만일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경우 중국이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유사시 자동 개입할 수 있는 근거인 군사동맹조약을 1961년에 북한과 체결한 바 있고 이 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은 그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강조는 수없이 하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또 일어나면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상황은 경제발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북한 정권의 취약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한 주도의 통일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그러한 통일이 평화적으로 일어나더라도 중국의 국익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통일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한다면 미군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 즉, 중국은 북한을 미국에 대한 완충지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북한의 붕괴는 막아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중국은 내심 한반도에서 전쟁에 이르지는 않을 정도의 긴장이 유지되면서 남북한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힘을 빼는 상황, 즉 분단의 고착화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해 어떤 움직임을 보였던가?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을 몇 차례나 중국으로 불러들이고 자신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던 것은 북핵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의 움직임은 북미 협상이 급진전되어 혹시라도 북한이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초조함과 조바심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인구 8천만에 육박하는 통일한국의 출현은 식민지배의 원죄가 있는 일본으로서는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통일을 훼방 놓을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일본은 북한 비핵화가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을 원치 않고 엉뚱하게도 예를 들어 미국의 직접적인 관심 이슈가 아닌 납북자 문제 해결을 미국에 제기하는지도 모른다.

한편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물론 통일한국이 현재와 같이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을 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남한 주도 통일의 경우 미군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통일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해서 러시아가 '착한 외세' 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남북한이 최소한 평화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거나 또는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자신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미 90년대부터 거론되고 있는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남·북·러 전력망 연결 등과 같은 메가 프로젝트는 물론 다양한 남북한과 러시아 간 삼각 협력 프로젝트들은 현재와 같은 한반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극동 러시아 개발에 필요한 남한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 인력의 결합이 실현될 수 있고 나아가 그로 인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 입장에서 강력한 통일한국의 등장은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하기보다는 극동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상대적 열세를 상쇄하여 줄 수 있는 견제세력으로서 유용하다고 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러시아는 남북통일이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전략적 측면에서도 유용하기 때문에 호의적이다.

러시아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남북통일에 호의적이라고 하였는데, 러시아의 중요성은 통일 과정에서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90년대 이래 북한 체제의 취약함과 불안정이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어 왔다. 북한 당국이 미국에 대해 체제 안전 보장을 하라고 하지만 미국이 정권 교체 시도를 자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의 안전은 북한 주민들의 김정은 정권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가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북한에서 급변사태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래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이웃나라들의 예상되는 행동에 대한 가설이 난무한다.

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언론에서 보도하였듯이 중국군이 북한에 진입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승인 없이 군사적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북한에 대해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와 시설만 접수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다. 만일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과 미국의 대응은 어떠할까? 한국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말고는 공식적으로 북진통일을 거론한 적이 없다. 한국군이 휴전선을 넘어 진격할 수 있을까? 이 경우 중국군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고 중국의 개입을 정당화시켜 주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 포함된 상호원조조약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군의 진입이 남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군사행동이 아니라 외교적으로만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현상 유지(status quo)가 된다면 미국은 중국과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1972년 2월 닉슨·마오쩌둥·저우언라이 비밀대화록을 보면 닉슨은 남북한 문제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중국과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였고 이러한 의견에 중국 측이 동조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 핵의 제거이지 남북한 문제의 해결은 아닌 것이다. 2015년 8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시 4개국(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 분할통제(안)'을 미국에 논의해 보자고 제시한 바 있다.

중국군이 전격작전을 전개하여 단기간에 북한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국제사회는 이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될 것이며, 결국 평양에 중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수립되고 통일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사태를 저지할 수 있는 나라는 누구인가? 중국의 이러한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일 것이다. 러시아로서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러시아도 중국처럼 오랜 기간 북한을 자기 영향권에 속한다고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러한 러시아의 견제에 대해 북한 핵무기의 외부 유출을 막을 수만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이 경우 국제기구 주관으로 보다 안전하고 질서 있게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중국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도 있다. 어쨌든 러시아의 견제로 북한 급변사태가 외세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해소된다면 새로이 들어서는 북한 정권과는 그간처럼 북한이 시종일관 남한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 진정성 있는 남북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향후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고려할 때 중국의 횡포를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러시아의 존재는 한국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장래에 여러 전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가정을 하는 것이 안전한 접근법이다. 그리고 미국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립주의 정책을 취하든 아니면 힘에 부쳐서든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서서히 물러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로 인한 힘의 공백으로 야기되는 중국의 득세를 일본도 견제하겠지만 특히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러시아는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나 현재 한국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최근 러시아의 경제 규모 즉 달러화 표시 국내총생산액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 주목할 만한 나라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러시아에 주재하는 특파원이 단 2명일 정도로 한국 언론도 별로 러시아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 순위' 2020년 판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순위'는 전 세계 2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와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 영향력 등을 종합하여 정한다. 한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러시아'와 국제사회에서 평가하는 '러시아'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올해로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러 계기에 양측이 공동성명에서 '향후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하였는데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이제 '착한 외세'가 아니라 '유용한 외세'로서 러시아를 거시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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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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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신간] 백범흠 / 미·중 신냉전과 한국 (늘품, 20…
일자: 11-12 | 조회: 952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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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미디어시비비비> 박병환 / 참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
일자: 11-12 | 조회: 479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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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 [신간] 서현섭 / 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 (보고사…
일자: 11-06 | 조회: 537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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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신간] 조윤수 / 독일 통일 30년, 독일의 과거에서…
일자: 11-06 | 조회: 436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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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 [신간] 손선홍 / 도시로 떠난 독일 역사 문화 산책 …
일자: 11-03 | 조회: 440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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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성주신문> 김석규 / 올해의 자랑스러운 성주인상 3명…
일자: 10-26 | 조회: 501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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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신간] 조윤수 / 대사와 함께 떠나는 소아시아 역사문…
일자: 10-26 | 조회: 651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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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미디어시비비비> 박병환 / 한국인의 대일본 및 중국 …
일자: 10-15 | 조회: 593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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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세계일보> 이준규 / 외교부, 전문가 집단으로 자존심…
일자: 10-14 | 조회: 512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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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서울문화투데이> 이함준 /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
일자: 09-18 | 조회: 572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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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신간] 송금영 / 아프리카 깊이 읽기 (민속원, 20…
일자: 09-16 | 조회: 549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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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미디어 시시비비> 박병환 / 미중 갈등 악화 가능성과…
일자: 09-15 | 조회: 739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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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내일신문> 박병환 / 벨라루스 사태, 또 하나의 색깔…
일자: 09-15 | 조회: 717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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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신간] 김병호 외 / 공공외교의 이해 (명인문화사, …
일자: 09-11 | 조회: 651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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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중앙일보> 연상모 / 강경 일변도 시진핑 외교, 마오…
일자: 09-11 | 조회: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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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한국일보> 한병길 / 우리가 페로니즘에서 얻어야 할 …
일자: 09-04 | 조회: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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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글로벌) 수상자 인터뷰> 이함…
일자: 08-21 | 조회: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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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천지일보> 박병환 / 덩샤오핑이 살아있다면 시진핑에게…
일자: 08-18 | 조회: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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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내일신문> 박병환 / G7개편 구상과 러시아, 그리고…
일자: 08-12 | 조회: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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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천지일보> 박병환 / 에너지 시장의 파워게임과 한-러…
일자: 08-07 | 조회: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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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천지일보> 박병환 / 일본 기업 징용 배상 판결 이행…
일자: 07-29 | 조회: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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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신간] 전봉근 / 비핵화의 정치 리플렛 (명인문화사,…
일자: 07-22 | 조회: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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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신간] 이백순 / 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 (21세기…
일자: 07-15 | 조회: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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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중앙일보> 임한택 /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의 현금화 …
일자: 07-14 | 조회: 782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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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신간] 황순택 / 서양명화 읽어주는 외교관 (모노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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