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를 공격하는 야당 인사들의 속마음은 정책 때문이 아닙니다. 상위 카스트 출신 의원들이 하위 카스트 출신인 모드 총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지요." 저자와 속내를 터놓고 지내왔다는 어느 인도 각료의 말이다.
인도 주재 대사를 지낸 저자의 이력 덕분에 이 책에는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부문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녹아있다. 일반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의문이 저자의 체험을 통해 떠오르기도 하고, 현지인 코멘트가 이질적인 인도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 대사의 인도 리포트가 체험 위주의 견문록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들 경험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인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사회, 정치, 경제 부문으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970~1980년대를 연상케 할 만큼 빠르고 급진적으로 변화 중인 인도에서 한국 기업, 청년들이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1979년부터 41년간이나 외교부에서 근무해온 저자 조현 현 유엔 대표부 대사(외교부 1ㆍ2차관도 역임했다)의 배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의 변화는 카스트 제도의 붕괴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저자 역시 인도 주재 대사 부임 전 카스트 제도의 심리적 체념이 체질화된 이곳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가 경험한 2010년대 중후반의 인도는 카스트 제도 그늘에서 비교적 많이 벗어난 모습이었다고.
저자는 인도 카스트 제도의 붕괴 원인을 도시화 및 세계화, 자본주의 확산, 인터넷 발달 등에서 찾았다. 오늘날 인도의 도시 젊은이들은 카스트를 의식하지 않고 있으며,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최하 계층에서도 자본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또 온라인 공간을 통해 사회 문제 토론이 활발해지면서 비이성적 과거 계급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토대 위에 인도는 높은 교육열과 최근 확대 중인 교육 지원 정책, 그리고 이에 따른 문맹인 및 빈곤층 감소, 중산층의 대두로 고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아직 과거 인도 이미지에 갇혀 있는 많은 한국인조차도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인도의 교육열은 뜨겁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현지에선 인도공과대학에 낙방해도 미국 MIT에 장학생으로 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인도의 사회, 정치, 경제적 변화와 그 근원을 따져본 저자는 마지막 챕터인 '발전하는 한-인도 관계'에서 우리나라와 인도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언뜻 눈에 보이기 쉬운, 혹은 한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빈곤과 무질서, 낙후된 인도 대신 인도의 잠재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양국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길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 기업, 청년들은 그 길에서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저자의 인사이트가 날카롭게 빛나는 책이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