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바로잡혀야 역사교육이 산다 /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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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1,129회 작성일2011-05-10 19:33:00본문
3월부터 활용될 새로운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발간된 이 시점에서 역사교육에 관한 논쟁이 다시 뜨겁다. 한편에서는 역사가 선택과목인 한 고등교육을 받고도 자국의 역사를 모르는 국민이 양산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한탄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자학사관을 고취시키는 편향된 역사교육은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하다는 비통한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민국 건국이나 6·25전쟁을 보는 시각에서나, 북핵·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현안 문제에 대한 해석에서나 국론이 심히 분열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기억공동체로 존재하기를 포기한 상태가 아닌가 걱정된다. 이번에 새로 나온 교과서들도 애국심으로 국민을 단결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매우 의문스럽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잘못돼 왔다. 실패의 일차적 원인은 공산권에 대한 철저한 정보통제가 마치 효율적 반공정책인 듯 착각한 군사정권의 몽매한 반공교육이었다. 공산치하의 삶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6·25전쟁 후세대는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실상이 어떤 것이고, 왜 배격해야 하는가를 납득할 수 없었다. 반면 ‘한국적 민주주의’의 암울한 실상은 눈앞에 펼쳐졌다. 대한민국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적대세력들은 정권에 대한 불신을 틈타 우리 국민의 역사의식을 교란시키는 세뇌작업에 공산주의 선동선전 전술을 체계적으로 동원했다.
그러한 국민 이간 전략은 학생운동권에 여과 없이 먹혀들어 갔다. 학생운동권은 민주화 투쟁으로 정권에 맞서면서 제대로 된 역사책은 읽을 겨를이 없었고, 국가 건설의 어려움에 관해 깊이 생각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운동권 필독서 가운데는 스탈린 사망 후 소련에서조차 지나치게 편향되고 왜곡된 서술로 폐기 처분된 세계사 교과서나 소련공산당사 등이 대거 포함되었다. 또 이제는 중국에서도 부정적 평가를 받는 문화혁명을 극도로 찬양하는 저술이 기저를 이뤘다. 그런 책들의 특징은 역사의 왜곡이다. 대한민국을 미국의 반식민지로, 이승만을 미국의 ‘주구’로 묘사하며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선전했다. 유엔이 제시한 남북한 인구비례 공동선거로 통일국가 건설 가능성이 높았는데, 소련이 이를 저지하는 바람에 무산된 사실 등에 관해서는 함구했다.
정치적 편향문제와 함께 지적할 것이 교육부 당국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책임의식 해이, 강단사학자들의 시민의식 결여, 지식인층의 교과목 이기주의, 좌파 상업주의 등이다. 비단 역사교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하급 학교 교과목이 지나치게 세분화됨에 따라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며 애국심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잃었다.
인류가 자연과 맞서거나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며 서로 협동하거나 싸우는 모습을 가장 생생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이 역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역사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치경제, 사회문화를 모두 별도의 과목으로 빼놓고 나서 따로 남게 되는 역사란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교과의 내용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도 심어지기 전에 섣불리 도입된 것이 이른바 ‘개념’을 집어넣어 주고 ‘사료’를 접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는 식의 교육방법이다. 그 결과 항일, 민중사관의 도입이라는 미명 아래 심어진 것은 대한민국을 건설한 세대에 대한 체계적 폄훼와 북한의 도덕적 정통성에 대한 환상이었다.
과거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새 검인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새 교과서 내용을 두고 진보와 보수 측 학자들이 표결까지 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우리 교과서 편찬체제가 얼마나 잘못돼 왔는가를 말해준다. 교과서는 부정할 여지가 없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집어넣기에도 면이 부족하다. 그런데 극심한 반대가 있는 내용을 교과서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랑스 공산당이 피카소에게 부탁해 그린 반전(反戰) 주제의 그림이 왜 우리 교과서에 들어와야 하는가. 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역사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교육을 맡길 때 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2011. 1. 25)
대한민국 건국이나 6·25전쟁을 보는 시각에서나, 북핵·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현안 문제에 대한 해석에서나 국론이 심히 분열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기억공동체로 존재하기를 포기한 상태가 아닌가 걱정된다. 이번에 새로 나온 교과서들도 애국심으로 국민을 단결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매우 의문스럽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잘못돼 왔다. 실패의 일차적 원인은 공산권에 대한 철저한 정보통제가 마치 효율적 반공정책인 듯 착각한 군사정권의 몽매한 반공교육이었다. 공산치하의 삶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6·25전쟁 후세대는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실상이 어떤 것이고, 왜 배격해야 하는가를 납득할 수 없었다. 반면 ‘한국적 민주주의’의 암울한 실상은 눈앞에 펼쳐졌다. 대한민국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적대세력들은 정권에 대한 불신을 틈타 우리 국민의 역사의식을 교란시키는 세뇌작업에 공산주의 선동선전 전술을 체계적으로 동원했다.
그러한 국민 이간 전략은 학생운동권에 여과 없이 먹혀들어 갔다. 학생운동권은 민주화 투쟁으로 정권에 맞서면서 제대로 된 역사책은 읽을 겨를이 없었고, 국가 건설의 어려움에 관해 깊이 생각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운동권 필독서 가운데는 스탈린 사망 후 소련에서조차 지나치게 편향되고 왜곡된 서술로 폐기 처분된 세계사 교과서나 소련공산당사 등이 대거 포함되었다. 또 이제는 중국에서도 부정적 평가를 받는 문화혁명을 극도로 찬양하는 저술이 기저를 이뤘다. 그런 책들의 특징은 역사의 왜곡이다. 대한민국을 미국의 반식민지로, 이승만을 미국의 ‘주구’로 묘사하며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선전했다. 유엔이 제시한 남북한 인구비례 공동선거로 통일국가 건설 가능성이 높았는데, 소련이 이를 저지하는 바람에 무산된 사실 등에 관해서는 함구했다.
정치적 편향문제와 함께 지적할 것이 교육부 당국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책임의식 해이, 강단사학자들의 시민의식 결여, 지식인층의 교과목 이기주의, 좌파 상업주의 등이다. 비단 역사교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하급 학교 교과목이 지나치게 세분화됨에 따라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며 애국심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잃었다.
인류가 자연과 맞서거나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며 서로 협동하거나 싸우는 모습을 가장 생생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이 역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역사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치경제, 사회문화를 모두 별도의 과목으로 빼놓고 나서 따로 남게 되는 역사란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교과의 내용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도 심어지기 전에 섣불리 도입된 것이 이른바 ‘개념’을 집어넣어 주고 ‘사료’를 접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는 식의 교육방법이다. 그 결과 항일, 민중사관의 도입이라는 미명 아래 심어진 것은 대한민국을 건설한 세대에 대한 체계적 폄훼와 북한의 도덕적 정통성에 대한 환상이었다.
과거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새 검인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새 교과서 내용을 두고 진보와 보수 측 학자들이 표결까지 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우리 교과서 편찬체제가 얼마나 잘못돼 왔는가를 말해준다. 교과서는 부정할 여지가 없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집어넣기에도 면이 부족하다. 그런데 극심한 반대가 있는 내용을 교과서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랑스 공산당이 피카소에게 부탁해 그린 반전(反戰) 주제의 그림이 왜 우리 교과서에 들어와야 하는가. 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역사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교육을 맡길 때 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201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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