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위기 앞의 한국 사회 / 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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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928회 작성일2011-05-10 19:26:00본문
천안함 사태 터지자 사실에 관계없이 국민은 분열, 언론은 과잉…
北이 무너질 때 우리가 그렇게 마비된다면? 그런 걱정 하고는 있는가
며칠 전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종종 만나는 모임에서 모두 천안함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제안했었단다. 그런데 어떤 한 친구가 부득부득 그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그 친구는 반대 의견을 가진 다른 흥분한 친구로부터 막걸리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천안함을 둘러싸고 분열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쓴소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이 한반도에서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또 다른 안보 관련 대사건의 축소판이자 예고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응 과정을 철저히 복기하고 교훈을 배워놓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천안함 사건은 우리 민주정치가 아직도 그런 위기를 다루기에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음을 드러내 주었다. 요즈음은 국내 정치와 외교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국내 정치가 취약하면 그것이 외교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국들을 상대로 외교를 잘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국민적 합의가 민주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선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놓고 국민의 의견이 갈라졌다. 대부분의 보통 시민은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먼저 북한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아마도 작년 11월 대청해전에 대한 설욕이 아닌가 추측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상조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북한이 했다, 안 했다"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fact)이 무엇이냐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이념적·당파적 입장이 더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국민이 그처럼 분열되었을 때, 안타까운 것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국회의 모습이었다. 분열된 의견들을 합리적 토론을 통해 수렴시켜주고 국론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어야 되는데, G8 정상회담,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세계 각국 정부의 대북비난성명이 나올 때까지 우리 국회는 성명 하나 발표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문제에서까지 당파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재작년 쇠고기 파동이 나서 온 나라가 뒤집혔을 때 보여주었던 국회의 모습이 어김없이 반복된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 국방부는 초기대응 때부터 실수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대응책이 무엇인지를 발표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부의 입장에서도 국민이 믿지 못하겠다는 자세를 무조건 탓할 일이 아니라, 못 믿겠다고 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내 궁금증을 철저하게 해소시켜주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국민과의 소통을 놓고 정부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조하며 일관되게 움직이는 시스템 작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꽃이다. 보도를 통해 정부에 대한 감시자 역할과 공론 형성의 터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 보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이다. 국가가 있어야 언론도 있기 때문에 안보위기 상황에서는 언론도 국익에 대한 고려를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종종 너무 앞서 가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한·미 합동훈련에 미국 항모가 참가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그런데 그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 중국이었다. 정작 당시 미 해군은 항모 파견을 결정한 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강하게 반대해왔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항모를 안 보낼 수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우리 언론도 천안함 사건이 미·중 대결로 확대되는 데 한몫을 한 셈이다.
2년 전 어떤 칼럼이 생각난다.\'북이 무너질 때 서울에 촛불이 켜지면\'이라는 칼럼이었다(조선일보, 2008. 7. 2.). 그 칼럼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북한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남한은 국내문제에 마비돼 결연한 대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중국과 미국은 판단하고 있고 그래서 양국 간에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공개 회담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경고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였다.
외국인들은 다 알고 있는 우리의 약점을 우리만 걱정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매일매일 정치싸움·이념싸움에 이력이 나서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인가?
윤영관 서울대 교수
조선일보 아침논단 사설 (2010.9.1)
北이 무너질 때 우리가 그렇게 마비된다면? 그런 걱정 하고는 있는가
며칠 전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종종 만나는 모임에서 모두 천안함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제안했었단다. 그런데 어떤 한 친구가 부득부득 그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그 친구는 반대 의견을 가진 다른 흥분한 친구로부터 막걸리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천안함을 둘러싸고 분열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쓴소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이 한반도에서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또 다른 안보 관련 대사건의 축소판이자 예고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응 과정을 철저히 복기하고 교훈을 배워놓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천안함 사건은 우리 민주정치가 아직도 그런 위기를 다루기에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음을 드러내 주었다. 요즈음은 국내 정치와 외교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국내 정치가 취약하면 그것이 외교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국들을 상대로 외교를 잘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국민적 합의가 민주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선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놓고 국민의 의견이 갈라졌다. 대부분의 보통 시민은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먼저 북한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아마도 작년 11월 대청해전에 대한 설욕이 아닌가 추측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상조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북한이 했다, 안 했다"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fact)이 무엇이냐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이념적·당파적 입장이 더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국민이 그처럼 분열되었을 때, 안타까운 것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국회의 모습이었다. 분열된 의견들을 합리적 토론을 통해 수렴시켜주고 국론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어야 되는데, G8 정상회담,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세계 각국 정부의 대북비난성명이 나올 때까지 우리 국회는 성명 하나 발표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문제에서까지 당파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재작년 쇠고기 파동이 나서 온 나라가 뒤집혔을 때 보여주었던 국회의 모습이 어김없이 반복된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 국방부는 초기대응 때부터 실수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대응책이 무엇인지를 발표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부의 입장에서도 국민이 믿지 못하겠다는 자세를 무조건 탓할 일이 아니라, 못 믿겠다고 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내 궁금증을 철저하게 해소시켜주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국민과의 소통을 놓고 정부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조하며 일관되게 움직이는 시스템 작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꽃이다. 보도를 통해 정부에 대한 감시자 역할과 공론 형성의 터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 보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이다. 국가가 있어야 언론도 있기 때문에 안보위기 상황에서는 언론도 국익에 대한 고려를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종종 너무 앞서 가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한·미 합동훈련에 미국 항모가 참가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그런데 그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 중국이었다. 정작 당시 미 해군은 항모 파견을 결정한 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강하게 반대해왔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항모를 안 보낼 수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우리 언론도 천안함 사건이 미·중 대결로 확대되는 데 한몫을 한 셈이다.
2년 전 어떤 칼럼이 생각난다.\'북이 무너질 때 서울에 촛불이 켜지면\'이라는 칼럼이었다(조선일보, 2008. 7. 2.). 그 칼럼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북한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남한은 국내문제에 마비돼 결연한 대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중국과 미국은 판단하고 있고 그래서 양국 간에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공개 회담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경고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였다.
외국인들은 다 알고 있는 우리의 약점을 우리만 걱정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매일매일 정치싸움·이념싸움에 이력이 나서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인가?
윤영관 서울대 교수
조선일보 아침논단 사설 (20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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