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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낙진 없는 핵실험 북, 권력승계용 ‘空砲’?/강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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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949회 작성일2011-05-10 1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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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전문가가 보는 북한 2차 ‘핵실험’
“1993년 김정일 집권 때도 ‘핵 연막탄’… 우리 정부, 정책 일관성 필요”

1991 년 12월11일 오후 5시30분께로 기억된다. 쉐라톤워커힐호텔 우리 대표단 회의실에서 정원식 총리 주재로 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단과 외교부·통일부 등 국장급 핵심 전략요원의 합동회의가 소집됐다. 회의에서는 “몇 가지 쟁점사항이 남아 있었지만 북측과 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다음날이면 남·북한 수석대표 간 기본합의서에 가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후 정원식 총리는 참석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건의할 사항이나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모두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깨고 내가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당시 외무부 외교정책실 심의관이었던 나는 이 회의에 전략기획단 요원으로 참석했다).

시선이 집중됐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북한의 핵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서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핵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 같다. 고위급회담이 시작된 지 만 15개월 만에 남북 간 기본관계를 규율하는 최초의 합의서가 타결됐다는 성과로 들뜬 분위기였던지 회의는 서둘러 종료됐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직속상관이던 당시 이상옥 외무장관에게 남아있는 쟁점사항의 보고와 함께 핵문제를 다시 꺼냈다. 그날 밤 10시 신라호텔 별실에서 심야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소집돼 쟁점사항에 대한 우리 정부의 최종 입장을 조율했다. 그리고 북한 핵문제와 합의서 가서명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결국 핵문제와 남북회담 병행 추진이라는 원칙으로 정리됐고, 고위급회담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문제를 계속 제기해 나간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IAEA와 핵 안전조치협정을 비준하고 핵사찰을 받게 되었으나 핵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채 오히려 증폭되기만 했다.

최초로 실시된 IAEA의 핵사찰에서 중대한 의혹이 발견되자 북한은 특별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때부터 북한 핵문제는 사실상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북·미 양자회담과 6자회담 등 협상의 형태와 틀을 제 아무리 바꾸고, 경수로와 중유·전력을 제공하는가 하면 북·미, 북·일 관계개선 등 온갖 형태의 보상 방안이 마련됐지만 북한의 핵개발은 저지되지 않았다. 북한은 겉으로는 합의사항에 응하는 척하면서 시간 벌기 전략을 통해 은밀히 핵개발을 진행해왔던 것이다. 정말 끝없는 게임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북한 핵실험 이후의 특이점

최근 북한의 2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전후 북한이 취한 제반 조치를 상세히 검토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최근의 핵실험이 그들의 후계구도 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북한의 조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와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운의 후계문제가 불거져 나온 와중에 취해졌기 때문이다.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운의 나이가 26세에 불과하고 경력이 일천하기 때문에 군부를 이용해 업적을 쌓고 있다는 주장이 최근의 상황 전개와 부합한다. 또한 북한이 내건 선군정치와 강성대국이라는 모토가 권력승계와 핵무기 개발이라는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특별히 주목할 사항이 또 하나 있다. 1993년 1차 핵위기 때도 북한에서 이와 비슷한 권력승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3년 3월 IAEA와 특별사찰문제를 빌미로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 명의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NPT 탈퇴선언으로 야기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 속에서 김정일은 제2인자 위치인 ‘국방위원장’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금의 상황 전개는 북한이 이러한 선례를 답습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둘째, 북한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유엔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안보리 의장성명을 빌미로 유엔 안보리가 공식 사죄할 것을 요구하고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대응한 것은 무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세계적 권위체인 유엔, 그 중에서도 국제 평화와 안전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안보리에 대한 도전은 세계와 등지는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치 엘리트 집단이나 관료집단이 주도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군부나 제3세력에 의한 입김에서 비롯됐다는 느낌을 준다.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채택 직후 평양에서 개최된 대규모 군중집회 또한 군부 주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다시금 확신해준 계기가 됐다고 본다.

셋째, 북한이 사태를 가일층 격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선언에 대해서도 북한은 휴전협정 무효화, 군사적 대응방침 등 강경 입장을 밝혔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에는 우라늄 농축작업 착수와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라는 극단적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이 이러한 일련의 초강경 카드를 꺼내든 것은 앞으로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소진해 버림으로써 북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어려워질 것이라는 문제점도 예상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북한이 강경카드를 계속 꺼내드는 것은 내부적으로 무엇에 쫓기거나 다급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가능하게 한다.

넷째, 북한이 군사적 위협 와중에도 개성공단문제 논의는 중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측이 남측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서도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임금과 토지사용료 대폭 인상을 제의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날로 격화되는 정세 변화 속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주의를 환기시킨다.

짐작하건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무리한 군사비 지출, 국제적 고립으로 자초한 대외무역 감소와 원조 삭감 등 경제적 손실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며, 남측으로부터 외화 충당이 절실한지도 모른다. 다섯째, 최근 북한이 취한 일련의 조치와 관련해 아직 풀리지 않은 몇 가지 의혹이 남아 있다.

핵실험을 하고 나면 당연히 방사능 낙진이 검출되는데, 이번 2차 핵실험에서는 이에 관한 구체적 데이터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대로 이동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빈 화차만 이동했다는 보도를 접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계 전문가들은 북한이 ICBM을 개발할 정도의 기술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며, 우라늄 농축 기술 확보에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무튼 이 문제는 국가 신인도와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로, 그 진위를 계속 관찰해 나가야 한다.

북측 조치의 정치·외교적 파장과 영향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 증가

김정일 후계작업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군부에 의해 권력 승계작업이 주도되는지, 역사상 전례 없는 3대에 걸친 권력 승계가 순조로이 이루어질지, 집권 엘리트층의 구성은 어떻게 변모할지 등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중·일·러 등 주변 4강이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정보수집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학계와 전문가 그룹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 문제에 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로 보아 협상에 의해 핵을 폐기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며, 북한의 핵물질이나 미사일 기술 이전도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 모든 문제는 북한의 현 집권층 자체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에 더욱 협조적이고 온건한 정권으로 교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핵문제에 대한 북한 집권층의 태도 여하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논의의 폭과 정도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과의 대결구도 심화

이번 유엔 제재조치(안보리 결의 1874호)의 골자는 화물 및 해상 검색 강화, 무기 금수 확대, 금융·경제제재 강화 등으로, 기존의 유엔 제재보다 무거운 제재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행 절차도 강화해 각국이 이 결의를 철저히 실행하는지 점검하도록 돼 있다. 북한도 이에 맞서 강경 대응하고 있으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북한으로서는 유엔의 제재조치를 무한정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 리비아가 유엔 제재 조치에 맞서기도 했으나 결국 순응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한다. 북한으로서도 어느 정도 시일이 경과하면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이미 개발한 핵무기 자체는 성역화하면서 여타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타협적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일의 강경대응 선회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여파로 한·미·일이 강경자세로 선회한 점이 주목된다. 최근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핵우산 제공 명문화를 비롯해 북한을 제외한 5자회동 추진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보이며 향후 협상전략에 관해서도 양국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협상 과정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협상 방식, 즉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일순간에 결렬돼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는 했던 과거의 전례를 앞으로는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불가역(Irreversible)의 원칙’을 재확인했고, 보상문제에서도 선 핵문제 해결 후 보상 제공이라는 원칙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한·미·일 각국의 독자적 대응 방침도 주목된다. 유엔 제재 조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국내적 조치를 서두르는 한편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비책(예컨대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격 방침 등)도 활발히 강구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러의 북한 두둔 입장 변화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두둔 입장에 미묘한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러는 북한의 2차 핵실험에 상당히 당혹해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유엔의 강화된 제재 결의에 과거와 달리 완강히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러가 주축이 된 최근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는 북핵에 절대 반대하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강력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이 회담에서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행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중국도 북한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여러 형태로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북한의 주요 동맹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으로 북핵에 대해 반대 여론을 조성했다는 점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최근 미국이 대 중국특사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물급 인사를 특사로 보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중 간에 과거와 달리 북한문제에 대해 깊이 있고 폭넓은 전략적 대화가 가능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양국이 지향하는 이해관계가 모처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중 간에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한 주변 정세 변화, 북한의 권력 승계 관련 문제, 북핵 폐기 전략 등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의견 교환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핵문제, 남은 과제

현 상황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위기상황이 분명하지만 위협과 기회가 분명 동시에 존재한다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북핵 문제가 이제는 갈 때까지 가버린 만큼 해결의 시기도 그만큼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가려졌던 북한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사실과 최근 북한의 태도가 국제사회의 용인 수준을 훨씬 넘어 버렸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 해결을 용이하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지금까지 북한의 입장을 두둔했던 중· 러의 입장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북한 핵문제는 우리와 우리 우방국만의 힘으로는 풀 수 없고,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과거와 같은 협상 방식이 잘 통하지 않으리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한계에 부닥치고, 그들이 활용할 협상카드도 거의 고갈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긍정적 요인을 적극 활용해 긴밀한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핵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스스로 다음 몇 가지 문제에 대해 확고한 원칙과 방침을 세워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

첫째, 한·미 간 긴밀한 안보협력 관계 유지다. 지금과 같이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한·미 간 안보협력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굳건한 동맹관계를 통한 안보협력 관계의 유지 발전이야말로 전쟁 억지력과 외교력을 높이는 첩경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일각에서 제기한 평화적 핵주권론을 적극 공론화해야 한다.

북한이 약속을 파기하고 상당수준의 핵 능력을 보유한 현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국제규약이나 규정에도 없는 권리를 스스로 제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최소한의 자위 수단을 강구하는 의미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핵 폐기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명분과 계기를 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기본 원칙과 방침에 대해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과 방침을 세웠다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우리 스스로 이를 허물어뜨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과거와 같은 협상 방식을 되풀이하게 되며, 핵문제 해결은 요원해질지 모른다.

특히 북한의 노회한 협상전략이나 전술에 말려들어 원칙을 허물어뜨리거나 국내적 비판 때문에 원칙이 흔들려서도 안 된다. 넷째, 시간은 우리 측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유엔의 강화된 제재 조치로 인해 공은 이제 북한 측으로 넘어갔다. 북한이 이에 반발할수록 유엔의 제재 수위는 높아질 것이며, 북한으로서도 종국에는 이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다급하고 안달이 난 것은 분명 우리가 아닌 북한이다. 최근 북한의 도를 넘는 무분별한 공세가 이를 잘 입증한다. 다섯째, 중·러에 대한 외교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중·러에 대한 지지 확보가 핵문제 해결의 관건임을 인식하고 외교력을 이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북한에 대한 중·러의 변화한 시각과 입장을 십분 활용해 핵문제 해결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전과 다른 적극적이며 끈질기고 집요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해법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사례 참조해야

남북 단일 국호(고려연방공화국 지칭)에 의한 유엔 가입은 북한의 중요한 국가 어젠다 중 하나였다. 주한미군 철수, 고려연방제 통일, 남한의 반공법 폐지에 버금가는 핵심 정책의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제안은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비중이 매우 큰 정책의 하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의 성공적 추진으로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신장됨에 따라 북한으로서는 남한 단독 유엔 가입이 조만간 추진될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북한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두 개의 조선으로 영구화하는 조치”이며 “흡수통일 방식에 의한 승공통일의 망상”으로서 “반민족적 범죄행위”라고 매도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외교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1990년 9월 개최된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유엔 가입 문제를 긴급 과제로 토의하자고 제의해왔다. 당시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나가자는 취지에서 일단 북한의 제의에 응하고, 세 차례의 실무회담을 가진 바 있다.

북측은 단일 의석에 의한 공동 가입안을 주장하면서 우리 측에 유엔 단독 가입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한편, 그렇지 않을 경우 남북고위급회담의 장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고위급회담과 우리의 유엔 가입 문제는 별개며, 우리로서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원하나 북한이 굳이 반대한다면 남한 단독으로라도 유엔 가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모처럼 마련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해 남북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부의 유엔 단독 가입 방침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후 북한은 우리의 유엔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고위급회담을 공전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정부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흔들림 없이 일관된 자세로 유엔 가입을 추진해 나갔다. 우리의 유엔 가입 실현에 최대 과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과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소 수교와 양국 간 관계 개선으로 인해 소련으로부터 거부권 불행사 약속을 얻어낸 정부는 마지막 남은 중국에 모든 외교 노력을 집중했다. 당시 중국과는 미수교 관계였기 때문에 접촉이 용이하지 않았으며, 다자회담이나 제3국을 통한 외교 교섭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북한이 제의한 단일 의석에 의한 남북 공동 가입안은 비현실적 안이기는 하나 남북이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다. 즉, 이 문제에 중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중국에 대한 집요한 외교 노력을 계속했다.

결국 이러한 우리의 끈질긴 외교 교섭 결과 중국도 한국의 유엔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북한에 사전 통보했던 것으로 짐작된다(이상옥 전 외무장관의 외교 회고록 <전환기의 한국외교>, 2002, 도서출판 삶과꿈, 43~111p 참조). 1991년 5월28일은 우리 외교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날이다.

그토록 북한이 집요하게 주장하고 철옹성 같이 버티던 핵심 정책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조선 당국이 기어이 유엔에 단독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는 조건에서 이것을 그대로 방임해 둔다면 유엔 무대에서 전 조선 민족의 리익과 관련된 문제들이 편견적으로 논의될 수 있고, 그로부터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남조선 당국자들에 의해 조성된 이러한 일시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서 현 단계에 유엔에 가입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유엔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분열주의적 행동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정세에 대처해 불가피하게 취하게 되는 조치다.”

북한으로서도 주변 정세 변화에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 핵문제도 국제공조가 확고히 이루어져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 해결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며 우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강근택 전 우크라이나 대사

월간중앙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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