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냐, 중국이냐 이분법 벗어나야/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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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943회 작성일2011-05-10 18:44:00본문
어느 행인이 지나가는 스님에게 물었다. 도(道)란 무엇이냐고. 스님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다. 그런데 행인은 계속 스님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요즈음의 한국에서 벌어지는 좌우 간 이념대결을 보고 있노라면 손가락만 바라보느라 달을 놓치는 행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념 그 자체에 매달리다 보니 실체가 안 보이고 길이 안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도 일부 언론은 ‘미국이 더 중요하냐, 중국이 더 중요하냐’고 화두를 잡는다. 그러곤 친미면 보수 우파요, 친중이면 진보 좌파라는 단순논리로 독자의 생각을 유도하고 싸움을 붙인다. 이러한 이분법적 단순논리의 틀에 잡히면 앞의 행인이 달을 못 보듯이 세계가 돌아가는 현실의 실체를 못 본다. 모든 사건과 변화들을 우리식의 이분법적 이념의 틀에 맞추어 해석해 버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북한의 ‘우리식’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앞으로 오바마 미 행정부는 중국을 전혀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지가 언젠가? 이념이 아니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포용하고, 동북아에서도 다자주의의 틀을 강화해 그 안에 끌어안으려 할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에 봉착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옛날처럼 힘만 믿은 무조건적 일방외교를 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재정능력의 한계를 강하게 의식하면서 외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동북아 정세를 안정시키고 미국의 안보이익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 다자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클린턴 정부 때의 고위관리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와 관련해 다자주의를 강조했다. 한·미 간에도 동맹은 동맹대로 강화하면서 역내 다자안보 협력도 동시에 강화시켜 나간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 고위급 미국 관리가 사석에서 한반도의 미래 문제를 놓고 한·미 양국과 중국은 마치 미국 고등학교의 첫 댄스파티와 같은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한다. 저쪽에는 여자애들, 이쪽에는 남자애들이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 상대방 쪽에 다가가 춤추자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양측 간에 해야 할 이야기는 많고, 그래서 말을 걸고 싶은데 어정쩡하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그런 국면이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 문제를 놓고 사전에 조율해 놓는 것은 관련 당사국 간에 불신과 오해를 줄이고 협력 가능성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우리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데 미국뿐 아니라 핵심관련국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 중 누가 먼저 상대방 중국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한반도 평화의 당사국 한국이어야 할 것이다. 혹시나 미국과 중국이 자기네끼리 소곤거리면서 한반도 미래 문제를 이야기하고 우리만 따돌리는 것 아닌가 소극적인 자세로 걱정만 하고 앉아있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측과 충분히 논의한 후, ‘당신네와 중국 간의 관계가 발전해온 정도만큼 한반도 문제 당사자는 한국이니까 우리 문제에 대해 중국과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다음 중국과 솔직하게 우리의 미래 문제를 협의하는 외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미·중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협력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주도적 외교의 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 한국이 너무 중국에 기울어지는 것 아니냐고 미국 측이 우려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미국이 더 중요하냐, 중국이 더 중요하냐라는 식의 골라잡기식 단순논리에 잡혀 있어서 미국에 동맹으로서의 신뢰감을 충분히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미국에 한국이 믿을 수 있는 동맹이라는 신뢰감만 심어주면 얼마든지 우리가 중국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가까워져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아니 미국은 그것을 오히려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적극적 발상을 하지 못해 왔을까. 소국 콤플렉스 때문일까. 경제력과 군사력을 합치면 한국은 세계 상위 5% 국가다. 이제 결코 소국이 아니니 이 정도 역할은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식의 이분법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정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주도적 외교의 전제조건이다.
윤영관 서울대 국제정치학
중앙일보/2009년 1월 12일
예를 들어 최근까지도 일부 언론은 ‘미국이 더 중요하냐, 중국이 더 중요하냐’고 화두를 잡는다. 그러곤 친미면 보수 우파요, 친중이면 진보 좌파라는 단순논리로 독자의 생각을 유도하고 싸움을 붙인다. 이러한 이분법적 단순논리의 틀에 잡히면 앞의 행인이 달을 못 보듯이 세계가 돌아가는 현실의 실체를 못 본다. 모든 사건과 변화들을 우리식의 이분법적 이념의 틀에 맞추어 해석해 버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북한의 ‘우리식’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앞으로 오바마 미 행정부는 중국을 전혀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지가 언젠가? 이념이 아니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포용하고, 동북아에서도 다자주의의 틀을 강화해 그 안에 끌어안으려 할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에 봉착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옛날처럼 힘만 믿은 무조건적 일방외교를 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재정능력의 한계를 강하게 의식하면서 외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동북아 정세를 안정시키고 미국의 안보이익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 다자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클린턴 정부 때의 고위관리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와 관련해 다자주의를 강조했다. 한·미 간에도 동맹은 동맹대로 강화하면서 역내 다자안보 협력도 동시에 강화시켜 나간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 고위급 미국 관리가 사석에서 한반도의 미래 문제를 놓고 한·미 양국과 중국은 마치 미국 고등학교의 첫 댄스파티와 같은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한다. 저쪽에는 여자애들, 이쪽에는 남자애들이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 상대방 쪽에 다가가 춤추자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양측 간에 해야 할 이야기는 많고, 그래서 말을 걸고 싶은데 어정쩡하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그런 국면이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 문제를 놓고 사전에 조율해 놓는 것은 관련 당사국 간에 불신과 오해를 줄이고 협력 가능성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우리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데 미국뿐 아니라 핵심관련국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 중 누가 먼저 상대방 중국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한반도 평화의 당사국 한국이어야 할 것이다. 혹시나 미국과 중국이 자기네끼리 소곤거리면서 한반도 미래 문제를 이야기하고 우리만 따돌리는 것 아닌가 소극적인 자세로 걱정만 하고 앉아있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측과 충분히 논의한 후, ‘당신네와 중국 간의 관계가 발전해온 정도만큼 한반도 문제 당사자는 한국이니까 우리 문제에 대해 중국과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다음 중국과 솔직하게 우리의 미래 문제를 협의하는 외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미·중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협력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주도적 외교의 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 한국이 너무 중국에 기울어지는 것 아니냐고 미국 측이 우려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미국이 더 중요하냐, 중국이 더 중요하냐라는 식의 골라잡기식 단순논리에 잡혀 있어서 미국에 동맹으로서의 신뢰감을 충분히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미국에 한국이 믿을 수 있는 동맹이라는 신뢰감만 심어주면 얼마든지 우리가 중국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가까워져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아니 미국은 그것을 오히려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적극적 발상을 하지 못해 왔을까. 소국 콤플렉스 때문일까. 경제력과 군사력을 합치면 한국은 세계 상위 5% 국가다. 이제 결코 소국이 아니니 이 정도 역할은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식의 이분법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정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주도적 외교의 전제조건이다.
윤영관 서울대 국제정치학
중앙일보/2009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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